[천자칼럼] 예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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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는 평범한 집 딸이다. 졸부집 아들 정일과 5년 연애 끝에 결혼하기로 하지만 정일 어머니로부터 수입가구 등 수억원어치 예단 목록을 받는다. "물려받을 재산이 얼만데"라는 이유다. 굴욕을 참던 승주는 정일 어머니가 친정엄마에게까지 패악을 부리자 결혼을 포기한다.
수경은 변호사 민우와 결혼하면서 예단비 문제로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결혼 후 임신한 수경에게 시어머니는 결혼 때 덜 가져온 예단비 나머지(1억원)를 채우든지 아니면 아이를 지우고 이혼하라고 다그친다. 남편마저 자기 엄마 편을 들자 수경은 이혼을 결심한다.
앞의 것은 이렇다 할 외화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화제가 됐던 2003년 KBS 2TV 추석특집드라마 '혼수'(김수현 극본),뒤의 것은 2008년 10월에 방송된 '사랑과 전쟁,아들 장사'편의 개요다. 현실을 바탕으로 했다곤 해도,"설마, 드라마라 과장됐겠지" 했더니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예단비 10억원과 봉채비(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비) 2억원을 주고 받은 뒤 결혼했다 5개월 만에 헤어진 부부가 벌인 소송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예단비를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났다. 그런가 하면 예단비 반환을 둘러싸고 벌인 또 다른 소송에선 1년 이상 혼인 관계를 유지했으니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이다.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맞소송을 낸 이유가 '결혼 과정에 쓴 경비와 예물 · 예단비 등을 놓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서'였다는 걸 보면 함께 산 1년이 두 사람 모두에게 얼마나 지옥 같았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족이 겪었을 고통 또한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안그래도 예비신부들의 가장 큰 고민이 예단이라고 한다. 시댁의 요구가 과하다 싶어도 두고두고 서운해 할까 가능하면 마련하려 하는데 그러다 보면 힘들기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송사건의 당사자들처럼 혼인신고를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마당이다.
예단(禮緞)은 비단으로 예의를 갖춘다는 뜻이다. 형편에 맞춰 정성껏 준비하면 되던 것이 일부에선 혼(婚)테크의 대상으로 바뀐 셈이다. 팔천 겁(측정할 수 없는 시간,힌두교의 1겁은 86억4000만년)의 인연으로 이뤄진다는 결혼이 한낱 예단에 좌우되는 세태는 서글픔을 넘어 끔찍하기만 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수경은 변호사 민우와 결혼하면서 예단비 문제로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는다. 결혼 후 임신한 수경에게 시어머니는 결혼 때 덜 가져온 예단비 나머지(1억원)를 채우든지 아니면 아이를 지우고 이혼하라고 다그친다. 남편마저 자기 엄마 편을 들자 수경은 이혼을 결심한다.
앞의 것은 이렇다 할 외화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고 화제가 됐던 2003년 KBS 2TV 추석특집드라마 '혼수'(김수현 극본),뒤의 것은 2008년 10월에 방송된 '사랑과 전쟁,아들 장사'편의 개요다. 현실을 바탕으로 했다곤 해도,"설마, 드라마라 과장됐겠지" 했더니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예단비 10억원과 봉채비(신랑집에서 신부집에 보내는 예물비) 2억원을 주고 받은 뒤 결혼했다 5개월 만에 헤어진 부부가 벌인 소송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예단비를 돌려줘야 한다'는 판결이 났다. 그런가 하면 예단비 반환을 둘러싸고 벌인 또 다른 소송에선 1년 이상 혼인 관계를 유지했으니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소식이다.
헤어지는 것도 모자라 맞소송을 낸 이유가 '결혼 과정에 쓴 경비와 예물 · 예단비 등을 놓고 의견이 좁혀지지 않아서'였다는 걸 보면 함께 산 1년이 두 사람 모두에게 얼마나 지옥 같았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가족이 겪었을 고통 또한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안그래도 예비신부들의 가장 큰 고민이 예단이라고 한다. 시댁의 요구가 과하다 싶어도 두고두고 서운해 할까 가능하면 마련하려 하는데 그러다 보면 힘들기가 이만저만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송사건의 당사자들처럼 혼인신고를 미루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마당이다.
예단(禮緞)은 비단으로 예의를 갖춘다는 뜻이다. 형편에 맞춰 정성껏 준비하면 되던 것이 일부에선 혼(婚)테크의 대상으로 바뀐 셈이다. 팔천 겁(측정할 수 없는 시간,힌두교의 1겁은 86억4000만년)의 인연으로 이뤄진다는 결혼이 한낱 예단에 좌우되는 세태는 서글픔을 넘어 끔찍하기만 하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