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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여록] 신뢰 허무는 공약 번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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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주요 공약을 백지화할 때 내세운 논리는 한결 같았다. '국익과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1일 방송좌담회에서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충청 유치 공약을 없던 일로 한 명분도 국가 백년대계였다. 2009년 11월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 약속을 한 데 대해서도 "표를 의식해서….후회스럽다"고 털어놨다. 지킬 뜻이 없으면서도 표 때문에 공약을 했다는 자기고백인 셈이다.

    이 대통령뿐만 아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 · 16 쿠데타 후 민정 불참을 발표했다. 그러나 "다시는 이 나라에 본인과 같은 불행한 군인이 있어선 안 된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약속을 뒤집고는 대선에 출마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7년 대선 당시 임기 2년 후 중간평가를 하겠다고 했지만 공약(空約)이 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쌀 개방은 대통령직을 걸고 막겠다"고 공약했지만 불과 10개월도 안돼 '죄책감' '진솔' '고뇌' 등의 용어를 동원,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사과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86년 대선 불출마 선언,1992년 정계은퇴 선언,1997년 당선 후 내각제 개헌 공약도 대표적인 '식언'사례다.

    이 대통령의 공약 번복을 일도양단으로 잘못이라고 판정하긴 쉽지 않다. 특히 세종시 수정안을 추진했던 것을 두고 국익을 해친다고 판단될 땐 뒤늦게나마 바로잡는 게 지도자의 용기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최고 정치 지도자의 '식언'이 반복되면 국민 신뢰를 잃을 수 있다. 영남표를 겨냥한 공약이었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지역 갈등 이유로 재검토할 것이라는 설까지 나돈다.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했다. 냉정하게 파악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게 정치라는 뜻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공약 바꾸기의 합리화를 이 문구에서 찾았다.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 여의도 정치인들은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을 즐겨 한다. 긍정적 측면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자기 변명이 필요할 때 종종 쓰여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국민들은 공약 번복에 대한 심판을 4월 재 · 보선과 내년 총선,대선에서 내릴 것이다. 국민들은 '예술'로 볼까,'생물'로 볼까.

    홍영식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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