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 절도에 정전·통신두절 사태 잇따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시(市)는 최근 시 전역의 수 천개에 달하는 맨홀 뚜껑을 모두 콘크리트로 메워버렸다.

지하에 매설된 구리전선을 절단해 훔쳐가는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전선 절도가 가장 기승을 부리는 캘리포니아에서는 리틀리그 야구장의 전선이 도난당해 야간 경기가 중단됐다.

유럽에서는 지난 7일 밤 프랑스 북부 지역에서 철로를 따라 전선과 광케이블이 대규모로 도난당해 국제선 고속열차인 TGV와 탈리스(Thalys)의 운행이 지연되기도 했다.

원자재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구리 전선이나 고철을 훔쳐 파는 절도범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절도범들은 자동차의 촉매변환장치에서부터 전선의 피복을 벗겨 낸 구리전선에 이르기까지 돈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건 훔쳐다 고철상에 판매하고 있다.

심지어 은행에 압류된 빈집에 들어가 벽을 부수고 내장된 구리 파이프나 전선을 뜯어내는 경우도 있으며, 전선을 훔치다 감전사하는 사례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와이에서부터 플로리다까지 각 지역에서는 고속도로 가로등이 정전되거나 전화가 불통이 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지자체들은 이를 제대로 수리할 여력이 없어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

이처럼 원자재 절도가 기승을 부리자 전력회사나 주 정부도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8일 보도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지난 2009년부터 고철상에 구리전선 등을 파는 사람은 사진을 찍고 면허증을 복사해두는 한편 3일 이상 기다린 뒤 매각 대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조치를 시행했고 조지아주와 오리건주도 유사한 조치를 도입했다.

플로리다와 하와이, 미시간, 오클라호마 등을 포함한 여타 지역에서는 불법적으로 구리 전선을 대량 보유하고 있는 것을 중대범죄로 다루고 있다.

오하이오의 전력회사 아메리칸 일렉트릭 파워 컴퍼니도 구리 함유량을 줄여 고철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는 전선을 개발해 기존의 구리 전선을 대체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미국 통신.전력.철도회사 등으로 구성된 '구리전선 절도 대응연합'의 브라이언 제이콥스 사무총장은 "우리는 이것이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믿는다"면서 "고철상들이 물건을 조사하고 있는 점이 그나마 확산을 막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절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