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그룹 작년 매출 77조 증가…현대·기아車 하나 더 생긴 셈
"삼성전자는 GE를,현대 · 기아자동차는 포드를 추월하다. "

2010년 4대그룹 상장사 매출 500조원 돌파를 이끈 삼성전자와 현대 · 기아차의 질주를 표현한 말이다.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한층 강해진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입증한 셈이다.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17조원을 기록하며 사상 처음 GE를 넘어섰고 현대 · 기아차는 자동차 생산대수에서 미국 포드를 넘어 세계 5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삼성,LG 계열사의 부품 회사들과 현대차 계열의 철강회사,SK의 화학 계열사들도 약진을 거듭하며 사상 최고 실적을 거들었다. 이 같은 4대 그룹 계열사들의 실적은 환율하락이라는 악재를 뚫어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삼성전자,현대차그룹의 약진

2010년 4대그룹 42개 상장사 전체 매출은 529조원이었다. 지난해 국내 총생산(GDP)의 절반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전체 매출 증가 규모는 77조원으로 2009년 현대차그룹 상장사 매출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증가규모만 놓고 보면 현대차만한 그룹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은 삼성전자의 역주 속에서 매출 210조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도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했다. 삼성전자는 2009년에 비해 매출이 18조원 이상 늘며 전체 매출 증가액 77조원의 23.7%를 담당했다.

영업이익은 17조원으로 4대그룹 42개 상장사 전체이익(39조원)의 43%에 달했다. 삼성 계열사 가운데 매출이 작년 한 해 1조원 이상 증가한 회사만도 삼성전자를 비롯 전기,물산,엔지니어링 등 4개나 됐다.

4대그룹 가운데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그룹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 · 기아차가 세계시장에서 판매호조를 보이면서 매출 증가율이 25.8%에 달했다. 상장사 전체 매출은 96조원으로 93조원에 그친 SK그룹을 추월했다. 영업이익도 8조2463억원을 기록하며 5조8050억원을 벌어들인 LG그룹을 앞섰다. 현대차그룹 계열 8개 상장사의 순이익은 11조원을 넘어섰다.

SK그룹에서는 주력인 SK이노베이션(옛 SK에너지)이 성장을 이끌었다. 작년 매출 43조8675억원으로 전년 대비 8조원 이상 늘어나며 그룹 전체 매출 증가액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휘발유 등유 경유 등의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전체 수출액은 26조원에 육박했다.

◆주력 계열사 질서에도 변화

그룹별로 종전 비주력 계열사들도 약진을 거듭했다. LG그룹 관계자가 "작년에는 LG화학이 주력 계열사 몫을 했다"고 말할 정도다. LG화학은 작년 매출 19조4714억원,영업이익 2조8304억원을 올렸다. 매출은 LG그룹 상장사 전체의 15%에 불과했지만 영업이익은 48.7%나 차지했다. 주력사인 LG전자의 부진을 훌륭히 메워준 셈이다. LG에서는 부품 계열사도 선전했다.

LG디스플레이는 매출이 5조5000억원 증가한 25조원을 기록하며 전자,화학과 함께 LG그룹의 3대 주력사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LG이노텍은 매출과 영업이익 증가율이 각각 66.97%,205%를 기록하며 가장 성장성 높은 회사임을 입증했다.

현대차그룹은 계열사 간 시너지효과가 극대화되면서 비주력 계열사들이 급성장했다. 현대제철은 고로사업이 본궤도에 오르고 계열사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처음으로 매출 10조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도 2009년에 비해 69.7% 증가하며 1조원에 육박했다. 기아차도 매출증가율 26.3%를 기록하며 현대차 증가율 15.41%를 압도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에 따라 주력인 현대차 매출이 전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48.7%에서 37.9%로 떨어졌다.

◆환율효과 없어도 약진

2009년 금융위기를 뚫고 한국 대기업들이 좋은 실적을 내자 '환율 효과'란 평가가 많이 나왔다. 즉 2008년 1061원이던 원 · 달러 평균 환율이 2009년 1276원으로 급등,그 덕을 본 것이라는 얘기였다. 환율이 떨어지면 다시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작년 평균환율은 1156원으로 9.4%나 떨어졌다. 그러나 전자,자동차,철강,화학 등 국내 대기업들은 사상 최고 실적행진을 이어갔다.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달라진 체질을 기반으로 환율하락이라는 악재를 헤쳐가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르고 있다.

이상현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생산 비중이 높아지면서 환율변동의 영향이 크게 줄어든 데다 가동률을 높임으로써 환율하락의 상당 부분을 커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국내 대기업들은 미국 시장 등에서 가격이 아닌 제품 경쟁력으로 승부하고 있어 환율 영향이 과거보다 크게 약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장기적으로는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기업들이 엔화 강세에 따른 어려움에서 벗어날 때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 이후 800~1000원 선을 오가던 원 · 엔 환율이 2009년부터 엔화 강세로 1300원 선을 유지하고 있는 틈을 타 국내 기업들이 세계시장에서 약진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