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양보하라는 겁니까. 아예 손해보고 장사하란 얘긴가요. "(A 정유사 대관업무 담당 임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일 신년 좌담회에서 기름값과 관련해 "대기업도 이제 좀 협조를 해야 한다"고 언급한 뒤 정유사들의 속앓이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13일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정유사,주유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는 이른바 '묘한 기름값' 발언 이후 나온 대통령의 두 번째 기름값 인하 메시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기름값 원가구조 조사에 착수하는 등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데 이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면서 해당 기업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기름 1ℓ를 팔아서 10원 정도의 마진이 남는다는 자료를 보여줘도 못 믿겠다니 어쩝니까. 당장 정부 요청을 받아들여 가격을 ℓ당 30원 내린다고 칩시다. 고유가로 국제 석유제품 가격이 연일 치솟는 상황에서 한 달도 안돼 인하 효과가 희석되고 가격이 다시 오르면 그 비난은 누가 책임질 겁니까?"

기업 활동의 기본권인 공급가격 결정에 정부가 입김을 불어넣으면 가격 왜곡 등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묘한 기름값'을 언급하며 "국제 유가가 내려가면 국내 기름값은 천천히 내려가는데 올라갈 때는 급속히 올라간다는 인상이 있다"고 했다.

휘발유 등 국내에서 팔리는 석유제품 가격은 국제 유가가 아니라 싱가포르 현물 시장에서 거래되는 국제 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1997년 석유시장 자유화 이후 정유사들이 국제 유가를 기준으로 기름값을 정하던 때도 있었지만,해외 수입사들이 원유보다 싼 휘발유를 국내에 들여와 혼란을 야기하면서 2001년 6월 정부 스스로 싱가포르 시장 가격으로 기준을 바꿨다.

이 대통령이 기업의 양보를 촉구하며 기름값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유류세의 인하 가능성을 내비쳤지만,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는 "당장 가능한 대책은 아니다"며 엇박자를 내고 있다. 자기가 쥐고 있는 것은 좀체 내놓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희생만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이런 식으론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가 공허해지지 않을까.

이정호 산업부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