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새 시대를 기대하게 한 것은 위안이 됐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25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1 아시안컵 축구대회 일본과 준결승에서 연장까지 2-2로 비기고서 승부차기에서 0-3으로 져 우승 도전을 멈췄다.

하지만 대회 내내 `젊은 피'의 활약을 바탕으로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조광래 감독이 이번 대회에서 이루려 했던 이번 두 가지 목표 중 하나인 51년 만의 아시아 정상 탈환은 수포로 돌아갔어도,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대비한 한국축구의 세대교체라는 또 하나의 목표는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둘 만하다.

◇젊어지는 한국축구


세대교체는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사상 첫 원정 대회 16강 진출을 이루면서 신호탄을 쏘아 쏠렸다.

미드필더 이청용(23.볼턴)과 기성용(22.셀틱) 등 20대 초반의 기대주들이 대표팀의 주축으로 단단히 뿌리내렸고, 이들은 생애 첫 월드컵 무대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고 제 기량을 뽐내면서 한국축구의 새 시대를 예고했다.

이번 아시안컵에서 한국축구의 세대교체 작업은 속도를 더 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10골을 넣었다.

구자철(22.제주)이 4골, 지동원(20.전남)이 2골, 손흥민(19.함부르크)과 윤빛가람(21.경남), 기성용, 황재원(30.수원)이 각각 한 골씩 보탰다.

황재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선수들이다.

이들은 23세 이하로 출전 선수의 연령을 제한한 내년 런던 올림픽도 참가할 수 있다.

대표팀은 주전 공격수인 박주영(26.모나코)이 무릎을 다쳐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면서 우려가 컸다.

하지만 박주영의 빈자리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젊은 공격수들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특히 K-리그에서 자란 구자철을 지켜보는 팬들의 눈은 즐겁기만 했다.

20세 이하 대표이던 2009년,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였던 지난해 11월과 불과 두 달 만인 이번 아시안컵을 비교해도 구자철은 늘 한 뼘씩 성장해 있는 느낌이다.

밖에서도 한층 젊어진 한국축구를 주목했다.

AFP 통신은 이번 대회의 한국 대표팀을 가리켜 '남아공 월드컵에서 요아힘 뢰브 감독이 이끌었던 독일 대표팀과 닮았다'고 평가했다.

당시 독일은 평균 나이 25.3세로 1934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의 24.2세 이후 가장 젊은 팀을 꾸리고도 강호 잉글랜드(4-1 승), 아르헨티나(4-0 승)를 대파하며 3위를 차지했다.

◇진화하는 한국축구


남아공 월드컵 이후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된 조광래 감독은 지난해 8월 나이지리아와 친선경기를 준비하려고 대표팀을 처음 소집했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지는 이제 겨우 4개월 지났다.

하지만 빠르고 세밀한 패스 플레이와 강한 압박을 바탕으로 볼 점유율을 높여가며 경기를 지배하려는 조광래식 축구가 팀에 잘 녹아들어 가는 모습이다.

이청용이 조 감독의 주문은 만화 축구에서나 가능하다고 웃으며 말한 적이 있지만, 이번 대회에서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유기적 움직임은 오래도록 손발을 맞춘 듯했다.

특히 측면 크로스에 이은 문전 마무리라는 단순한 공격 패턴에서 벗어나 발재간이 좋은 공격수, 미드필더들이 중앙에서 짧은 패스로 공간을 차지해가면서 공격 기회를 만드는 모습은 조광래 감독이 원하는 스페인식 축구를 닮아가고 있다.

186㎝의 큰 키에도 민첩하고 유연한 몸놀림으로 상대 수비진을 휘저으며 타깃맨의 임무를 훌륭하게 해낸 지동원을 중심으로 구자철, 이청용, 박지성의 2선 공격이 어우러져 공격 전술도 훨씬 다양해졌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조 감독이 처음 태극마크를 달게 해준 중앙 수비형 미드필더 이용래(25.수원)가 주전 자리를 꿰차 기성용과 함께 상대 공격의 1차 저지선 역할을 해낸 것도 구자철의 보직 변경 등 대표팀의 선수 기용 및 전술 변화에 큰 보탬이 됐다.

◇수비라인 정비ㆍ교체카드 활용은 과제

물론 과제도 남겼다.

수비진의 경우 공격수나 미드필더들과는 달리 이영표(34.알힐랄), 이정수(31.알사드), 곽태휘(30.교토상가), 황재원, 차두리(31.셀틱) 등 30대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주축으로 뛰었다.

일본과 경기에 선발로 나선 조용형(28.알라얀)도 20대 후반이다.

모두 베테랑들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수비 조직력은 불안했다.

특히 중앙수비수는 석연찮은 판정 탓도 크지만 불필요한 반칙으로 퇴장과 경고 누적이 이어져 이정수-곽태휘, 이정수-황재원, 황재원-조용형으로 조합이 매번 바뀌면서 불안을 가중시켰다.

물론 수비라인도 조광래 감독이 손을 대려 했던 곳이다.

조 감독은 중앙수비수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홍정호(22.제주)를 비롯해 이번 대회 최종엔트리에는 들지 못한 김영권(21.FC도쿄) 등 젊고 빠른 선수들로 대표팀 수비라인을 새롭게 하려 했지만 대회 준비 기간이 짧아 뜻을 이루지 못한 면이 있다.

이제 수비진영의 세대교체 작업도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번 대회에서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교체카드의 활용이다.

물론 이란과 8강에서 교체 투입된 윤빛가람이 연장전에서 결승골을 넣기는 했어도,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교체 선수의 투입은 눈에 띄지 않았다.

K-리그 득점왕 유병수(23.인천)는 대회 중 미니홈피에 올린 글로 곤욕을 치른 뒤로는 출전 기회가 없었고, 염기훈(28.수원)이나 김보경(22.세레소 오사카) 등도 존재감이 거의 없었다.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