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헌재 인적교체기…이념지형 `좌→우' 이동 예상

대법원에서 진보 성향의 인사들이 올해 줄줄이 퇴임하면서 사법부의 실질적인 권력교체가 이뤄질 전망이다.

신(新)보수를 표방하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 3년째를 맞았지만 사법부는 그동안 참여정부 때의 지도부가 기존 정책노선을 고수해 정부ㆍ여당과 종종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소수의견을 냈던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6년 임기 만료로 올해 대거 교체될 예정이어서 사법정책 노선이 '진보'에서 '보수'로 선회하고 행정부와 사법부의 관계도 재정립될 것으로 관측된다.

◇진보성향 대법관 줄줄이 퇴임 = 올해 14명의 대법관 중 5명이 한꺼번에 바뀌면서 대법관의 3분의 2 이상이 현 정부에서 선임된 인사들로 채워진다.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이 제청받아 임명한 대법관은 양창수ㆍ신영철ㆍ민일영ㆍ 이인복 등 4명이지만, 2월 양승태 대법관을 비롯해 5월 이홍훈 대법관, 9월 이용훈 대법원장, 11월 박시환ㆍ김지형 대법관이 차례로 물러나면 현 정부 들어 임명되는 대법관이 9명으로 늘어난다.

특히 올해 법복을 벗는 이홍훈ㆍ박시환ㆍ김지형 대법관은 앞서 작년 8월 퇴임한 김영란 대법관, 현재 유일한 여성 대법관인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대법원에서 여성, 노동자 등 사회적인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 성향의 소수의견을 주로 내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법원 안팎에서는 이들이 퇴임하면 향후 대법원 판결은 보수적인 색채가 짙어질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뒤를 이을 후임 대법관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제청하지만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로 채워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이용훈식 사법개혁도 궤도수정? = 이용훈 대법원장이 물러나면서 법원 주도의 사법개혁도 궤도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2005년 취임 직후부터 '공판중심주의'에 기초한 형사사법제도의 개선 등 강도높은 사법개혁을 추진하는 한편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한 사법부의 과거사 청산 노력을 지속해왔다.

대법원은 작년 12월 전원합의체 선고에서 유신시대 악법인 대통령 긴급조치 1호에 만장일치로 위헌 판결을 내렸고, 권위적인 사법풍토와 수직적인 인사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올해부터 도입키로 하는 등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 같은 사법정책 개혁은 사법부내 진보적인 소장판사들의 목소리를 키우는 대신 수사권 제약으로 검찰과의 갈등을 촉발했다.

급기야 작년에는 일부 소장판사의 판결이 좌편향 논란을 야기하면서 이 대법원장과 사법부 전체가 보수진영의 집중포화를 받고 정부ㆍ여당과 갈등이 표면화되기도 했다.

대법원장은 행정ㆍ입법부와 함께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으로 13명의 대법관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법관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사법정책은 물론 법원 전반의 이념적 지형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런 대법원장의 지명권은 대통령이 갖고 있어 차기 대법원장 지명에는 현 정부와 원활한 정책공조가 우선적인 인선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관 3명 교체…헌재도 인적쇄신 = 헌법재판소도 올해 9명의 헌법재판관 중 3명의 교체로 인적쇄신이 본격화된다.

현 정부 들어 임명된 헌법재판관은 작년 말 동국대 총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희옥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내정된 박한철 전 서울동부지검장뿐이다.

오는 3월과 7월 퇴임하는 이공현ㆍ조대현 재판관까지 더하면 3명으로 늘어난다.

내년 9월 민형기ㆍ이동흡ㆍ목영준ㆍ김종대 재판관이 물러나면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헌법재판관의 3분의 2 이상이 바뀌게 된다.

헌법재판관은 대통령ㆍ국회ㆍ대법원장이 3명씩 지명권을 갖지만 사실상 온전한 야당 몫의 재판관 1명을 제외하고는 현 정부ㆍ여당의 영향권 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주요 정치적 사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는 헌재도 올해부터 본격적인 교체기로 접어드는 셈이 된다.

김희옥 재판관은 대통령, 이동흡ㆍ민형기ㆍ김종대 재판관은 대법원장, 조대현 재판관은 국회(야당), 이공현 재판관은 국회(여당), 목영준 재판관은 국회(여야합의)에 지명권이 있다.

한편 17일 오후 대법관제청자문위원회(위원장 이종욱)는 내달 퇴임하는 양승태 대법관의 후임자 후보군을 공개한다.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abullapi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