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 총선을 1년 앞둔 해다. 그런 만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임기 말 통치권 누수 현상)이 우려되는 것과 함께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이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특히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할 대상 1호로 꼽았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포퓰리즘이 극성을 부릴 경우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지 않고 소비적인 분야로 흘러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제시한 내년 5% 안팎의 성장과 재정 건전성 목표가 일그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자감세'논란 재점화될 듯

올해 하반기 야당을 중심으로 제기됐던 '부자감세' 논란은 내년에 재연될 소지가 크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야당이 주장했던 '소득세 · 법인세 최고구간(소득세는 과세표준 8800만원 초과,법인세는 2억원 초과) 세율 인하 철회' 요구가 이달 초 국회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내년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야당 의원들이 제출한 관련 법 개정안은 모두 재정위에 계류돼 다음 회기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법 개정안을 제출한 이용섭 민주당 의원 등은 내년 2월 임시국회가 시작되자마자 다시 논의할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부자감세' 공격을 피하기 위해 소득세 · 법인세 인하 철회 주장에 일부 동조할 개연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박근혜 의원은 이미 고소득층 감세정책 철회가 맞다는 소신을 여러 차례 주장했고 몇몇 의원들 역시 여기에 동조의 뜻을 표해왔다. 이에 따라 내년 여권 내 대권구도 변화에 따라 소득세 · 법인세 인하 문제는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철회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세율 인하가 경제에 미칠 긍정적 효과는 물론 조세정책의 일관성을 감안하더라도 철회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법인세 인하가 번복될 경우 대외적인 신뢰도에까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 요구 급증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복지 증액 요구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통과된 내년 예산에서도 복지 분야 예산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안보다 1214억원 증액됐다. 이로써 복지 예산 총액은 86조4000억원으로 총 지출 예산(309조1000억원)의 28.0%를 차지했다. 총 지출 대비 복지 예산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올해 대비 증가율은 6.3%로 총 지출 증가율 5.5%보다 높다.

국회에서 증액된 복지 예산은 노인과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 지원 자금으로 대부분 표심에 민감한 것들이다. 동절기 경로당 난방비(436억원 증액),참전명예수당 인상(948억원 증액),취약계층 주거환경 개선(315억원 증액) 등이 대표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예산인 만큼 필요한 것들이지만 적정선을 넘어설 경우 중장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을 해쳐 국민의 부담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복지 확대 목소리가 더욱 커질 공산이 크다. 야당은 복지 예산을 중심으로 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요구하고 있고,여당 내에서도 복지이슈를 선점하려는 대선주자들 간의 물밑 다툼이 치열해질 조짐이다.

◆상생 요구도 봇물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대 · 중소기업 상생과 같은 정책 요구도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상생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사전적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혁신을 파괴하고 안주와 담합을 유발할 개연성이 높다"며 "그 결과 '경쟁'이 아닌 '경쟁자'를 보호하게 되고 최종 수요자의 이익은 외면돼 정책실패로 끝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선거를 앞두고 공직사회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과거 대통령 선거철만 되면 고질적으로 나타났던 고위 공직자들의 줄서기나 선거를 앞두고 논란을 피하기 위한 정책 미루기가 벌어질 경우 당초 현 정부 출범 초기 제시했던 각종 개혁 과제는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

◆ 포퓰리즘

populism.'대중주의','인기영합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1890년 미국의 양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에 대항하기 위해 생겨난 인민당(populist party)이 농민과 노조의 지지를 얻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도외시한 과격한 정책을 표방한 것에서 연유됐다. 선거에서 표를 의식해 경제논리에 반해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는 것이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아르헨티나의 페론 정권이 노동계층의 지지를 얻어 탄생했지만 대중 선심정책으로 국가 경제를 파탄시킨 것이 대표적 폐해 사례로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