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내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면서 그 후폭풍이 거세다. 민주당은 '4대강 날치기 예산 무효화'를 선언하고 장외 투쟁에 들어가 정국이 급속히 냉각되고 있다. 국회가 다시 난장판이 되지 않도록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데도 여야 모두 서로를 비난하며 제 갈 길을 가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특히 예산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제대로 심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중요한 사업 예산은 빠지고,이른바 실세 의원들의 민원성 예산은 크게 늘어나는 등 허점이 수두룩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고 있다. 여당이 강행 처리라는 정치적 부담을 질 때는 회기내 처리라는 당위성 외에도 국가경제와 국민생활 지원이라는 정책적 목표에도 충실해야 한다. 하지만 결과가 딴판으로 나타나면서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12세 이하 어린이가 병의원에서 필수예방접종을 받을 경우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책정한 338억8400만원의 예산과,12~24개월 영유아에 대한 A형 간염 예방접종비 지원예산 62억6500만원이 전액 삭감된 것이 대표적이다. 예산안이 얼마나 부실하게 심의됐는지는 여당이 전략적으로 추진키로 했던 사업예산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데서 잘 드러나고 있다. 한나라당이 불교계에 약속했던 180억원 규모의 템플스테이 예산이 대폭 삭감되고,강원도 춘천~속초 간 동서고속화철도 사업비 30억원이 사라진 것 등이 그렇다.

스스로 앞장서 추진했던 사업예산마저 누락시키거나 대폭 삭감된 것을 보면 정부와 여당의 예산 편성 및 추진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예산안의 회기 내 처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지만 이처럼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은 어떤 변명도 통하기 어렵다.

반면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예산은 큰폭으로 늘어나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한나라당의 이상득 의원과 국토해양위원장 출신 이병석 의원 지역구인 경북 포항 · 울릉과 관련된 사업 예산은 무려 1430억원 늘었고,예결위원장인 이주영 의원,국회의장인 박희태 의원 지역구 예산이 수백억원씩 증액됐다. 야당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당 원내대표인 박지원 의원과 이회창 선진당 대표 지역구 예산도 각각 65억원,33억원 늘었다.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극한 대치를 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정작 중요한 사업예산은 빠뜨리면서 실속을 챙긴 의원들은 이들 말고도 많다.

한나라당은 뒤늦게 예산전용 등 보완대책을 마련한다고 법석을 떨지만 이는 또 다른 형평성 논란을 빚을 것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반복되는 예산 국회의 폭력사태와 나라살림은 안중에도 없이 지역사업만 챙기는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예산안 심의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방안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