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원)이 신사상을 받으면 안 되는데…."(천정배 민주당 의원) "우리도 사실 신사는 아닌데…."(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백봉신사상의 시상식이 있었던 7일.식장에서 나온 의원들의 '뼈 있는 농담'이었다. 백봉신사상은 독립운동가이며 제헌의원,국회부의장을 역임한 백봉 라용균 선생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제정됐다. 국회를 출입하는 각 언론사 기자들이 정치적 리더십,업적 및 성과,교양과 지성,모범적 의정활동 등의 분야에서 두드러진 의원들을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하는 방식으로 수상자를 가린다. 올해 백봉신사상 수상자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해 김무성 원내대표,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천정배 의원 등이 포함됐다.

천 의원의 말에는 룰을 지키는 신사보다는 전투력으로 승부하는 '파이터'가 야당의 면모로 더 적격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의 말 역시 여당도 야당이 갖고 있는 의식이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과연 이들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이날 밤 10시가 넘었을 무렵 본회의장에선 '와장창'하고 유리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정기국회 종료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여야가 새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 물리력을 동반한 실력 대결에 나선 것.박희태 국회의장과 정의화 부의장의 본회의장 진입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먼저 의장실을 점거했고,여기에 민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거세게 밀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유리문이 박살난 것이다.

본회의장 입구의 나무 문도 부서지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양측의 충돌은 8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예산안 단독처리를 위한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본회의장 진입을 시도했고,민주당 측은 물리력으로 제지하면서 충돌했다.

모두 양당 원내대표가 신사상을 받은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백봉 선생이 이 광경을 봤더라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12월만 되면 폭력을 되풀이하는 정치인들이 이 상을 받을 자격은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박신영 정치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