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면에 우리 소리·향기 담아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개척"
"제 그림은 한국적인 정서의 분출물입니다. 정신적 긴장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첨예한 순간들을 붓으로 잡아내기 때문에 지성의 사색보다 내면에서 나오는 몸짓이라고 생각해요."

내달 1일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 매장(30일까지)과 롯데에비뉴엘갤러리(14일까지)에서 초대전을 갖는 중견작가 김두례씨(50 · 사진)의 추상 회화론이다. 원로 화가 김영태씨(81)의 딸인 그는 한때 인물화,풍경화,누드화에 천착하다 2000년 뉴욕으로 건너가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화풍으로 선회했다.

2000~2003년 작업은 10여가지 색을 중심으로 했으나 이젠 색을 최소한으로 축약하고 극과 극인 보색들로 화면을 채운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큰 화폭에 점이나 선 하나로 집약되는 한국적 추상표현주의 작업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우리의 미감을 살려내는 데 색동저고리,보자기,황토흙,민화만큼 좋은 소재가 없더군요. 초기에는 풍경의 속성에 역점을 두면서 형태와 여백 간의 균형을 모색했지만 2005년부터는 빨간색으로 화면을 장악하면서 마음 속의 움직임을 몸짓 기호로 축조했지요. "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 같은 대가들의 화면에서 분출되는 에너지를 한국적인 정서와 접점으로 치환하고 있다는 얘기다. 풍경과 인물 등 대상의 형태를 깨트려 색면 속에서 자연과 인간의 융합을 시도하는 그는 "작품에서 빨간색은 우리 일상 풍경을 아우르고 청색선은 수평선,초록색은 낮은 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면을 한복 저고리와 치마처럼 7 대 3의 비율로 분할하고 오방색을 자주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자연사랑' 시리즈에서는 서구의 단색 추상화가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한국 정신이 돋보인다. 자연에서 끌어낸 색감들이 우리 전통의 빛과 소리,냄새를 뿜어내는 듯하다. "서편제 같은 맑은 소리와 우리 땅에서 나오는 후각적인 정취,산야에 흐르는 시적인 운치를 색으로 표현하는 데 주력합니다. "

회화를 음악과 시의 감성으로 응축시키고 싶다는 그는 "드러나는 풍경 자체가 아니라 그 밖의 형상인 상외지상(象外之象)을 찾는데 주안점을 둔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그의 작업에서는 '관조'의 힘이 짙게 배어나온다. "그림에는 보고 그리는 그림(look and draw)과 생각하고 그리는 그림(think and draw)이 있습니다. 제 작업은 후자에 속하지요. "

'풍경의 몸짓'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색면 추상화를 비롯해 인물화,판화 등 50여점을 만날 수 있다. (02)726-442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