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파일:'11 · 11 옵션테러'

11월11일(목) 옵션만기일에 발생했다. 한 외국 증권사 창구를 통한 '매물 폭탄'에 증시가 폭락하고 피해가 양산된 사건이다. 변동성이 큰 만기일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용의자의 주문 규모와 수법의 대범함은 유례가 없어 특별한 추적이 요구된다.

사건의 주요 배경인 한국 증시는 11일 장 마감 10여분 전까지도 이상징후 없이 흘러갔다. 1966.70으로 시작한 코스피지수는 장중 1976.46까지 올라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감 동시호가가 시작된 오후 2시50분,1조6200억원에 달하는 외국인 프로그램 매물이 쏟아졌다. 코스피지수는 동시호가 10분 사이 50포인트 이상 급락해 1914.73으로 마감했다. 이날 외국인 순매도는 사상 최대였다. 문제의 외국인 매도주문은 도이치증권 창구에서 쏟아져나왔다. 도이치증권에서 이날 털어낸 주식이 2조3000억원어치에 달했다.


# 피해상황

피해는 고수익 고위험의 옵션시장에서 주로 발생했다.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이 운용하던 한 사모 파생상품펀드는 하루 만에 888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풋옵션과 콜옵션을 동시에 매도하는 '양매도' 전략이 지수 폭락으로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와이즈에셋의 옵션매매를 중개한 하나대투증권은 증거금 부족분을 메우느라 760억원을 대납해야 했다. 와이즈에셋은 '적격기관투자가'로 분류돼 나중에 증거금을 내는 '사후증거금' 납부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토러스투자자문도 기관 6곳에서 위탁받아 운용하던 2024억원의 옵션 일임계좌에서 49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이 밖에 교보 · 키움 · 한국투자증권 등 상당수 증권사들이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 범행도구

수사 결과 도이치증권 창구를 이용한 용의자는 하반기 들어 차익거래 물량을 착실히 쌓아왔다. 지난 6월 초 1664억원에 그쳤던 매수차익 잔액은 7월16일 1조원을 넘어섰고,만기일 전날인 11월10일엔 2조264억원으로 불어났다.

9월 선물 · 옵션 동시만기일에도 포지션을 청산하지 않고 그대로 이월하며 힘을 축적한 뒤 2조원에 달하는 매물을 일시에 매도(청산)하자 폭발력이 배가됐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만일의 사태에 대한 준비가 부실했다. 만기일까지도 선물 가격이 고평가되고 현물 가격이 낮은 '콘탱고' 상태여서 매수차익 거래를 청산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고 판단한 때문이다.

# 범행동기는

용의자는 11일 굳이 고평가돼 있던 선물을 매수하고 현물 주식을 팔아치웠다. 언뜻 실익이 없어 보이지만 환차익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도이치증권이 매수차익 잔액을 쌓기 시작한 6월 원 · 달러 환율은 1230~1260원대였지만 만기일엔 1100원대로 내려갔다. 환차익으로만 10% 정도 수익을 얻은 셈이다.

여기까지는 위법이 없다. 하지만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를 상쇄시킬 다른 장치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풋옵션을 매수해 뒀다면 최고 499배의 수익이 가능했다.

올 들어 공모펀드와 연기금의 주식거래에 0.3%의 증권거래세를 부과키로 한 조치도 범행을 부추겼을 것이란 지적이다. 거래세 부담에 국내 기관들이 차익거래시장에서 대거 이탈하자 용의자로서는 노 마크 찬스를 맞은 셈이다.

# 용의자의 당일 행적은

용의자의 행적은 대범하고 영리했다. 동시호가 10분간 2조원이 넘는 매수차익 물량을 거의 털어낼 계획이었음에도 짐짓 모른 척 딴청을 부렸다. 만기일에 프로그램 매매를 하려면 종료 15분 전인 오후 2시45분까지 거래소에 신고해야 하는데도 신고는 시한을 넘긴 2시47분께 완료됐다.

규정을 어긴 데 따른 제재금이 최대 200만원에 불과한 점을 악용한 지능적인 행위로 판단된다. 결국 한국 증시는 대응할 시간이 부족해 '눈 뜨고 당한' 모양새가 됐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