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차오를 때 그리고 누적된 피로에 온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울 때 동네 목욕탕에 가면 잠시나마 모든 걸 잊고 행복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어디로 가야하냐고 묻는다면 난 1초의 주저함도 없이 동네 목욕탕이라고 답할 것이다. 국회의원이 동네 목욕탕에 다니면 사람들 시선이 부담스럽고 불편하지 않냐고 물어보는 분들도 계신다. 그러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고 여기 아니면 어딜 가야하냐고 웃으면서 반문하곤 한다. 사우나에서 개운하게 땀 흘리고 냉탕도 오가며 냉커피를 한잔 마시면 세상이 내 것 같아진다. 박카스에 사이다를 섞어 얼음 가득 채워 마시는 일명 '박사'도 인기 품목이다. 사우나를 즐기는 분들이시라면 아마 공감백배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동네 목욕탕을 즐겨 찾는 것은 비단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시설이 과히 훌륭하지도 않고 열명 남짓 앉으면 꽉 찰 만큼 사우나실도 비좁지만 그곳엔 내가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인생과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시댁과 친정 이야기,남편과 자식 걱정은 영원한 테마이고 미담이나 혹은 분통 터지는 신문 사회면 기사들도 대화의 단골소재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눈물이 고스란히 녹아나는 곳이다. 너나할 것 없이 금방 친구가 된다. 어떤 꾸밈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원초적으로 만나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신장이 안 좋아 일주일에 두 번 투석하시던 분이 어느날 안보이셔서 물었더니 돌아가셨다고해 한동안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고,종일 서서 일하고 오신 분이 퉁퉁 부은 얼굴과 다리로 반갑게 인사하시는 게 때론 더 서글프기도 하다.

또한 동네 목욕탕은 온갖 정보가 교류되는 곳이기도 하다. 매실농축액을 맛있게 만드는 법부터 관절치료는 어느 한의원이 잘 하더라,동네 맛집은 어디이고,파마는 어느 미장원이 값도 싸고 좋더라 등 실생활에 유용한 정보의 집합소다. 땀 흘린 후 들어가는 냉탕이 남편보다 더 좋다는 아주머니 말씀에 한바탕 깔깔대며 웃기도 한다. 얼음통을 들고 가다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아주머니들이 괜찮냐고 묻기보다 '아이구 얼음 아까워서 어쩌냐'를 연발하셨다며 섭섭해 하는 새댁의 말에 큭큭거리기도 한다.

동네 목욕탕이 내게 주는 의미는 남들 생각보다 크다. 피로를 풀기 위한 공간을 넘어서 서민들의 애환을 여과 없이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푸념을 늘어놓기도 하고 은연중 이런저런 자랑을 해 핀잔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참으로 정겨운 곳이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이다. 잠시 만나 가슴 속 말들을 쏟아내고 나면 다시 엄마로,며느리로,딸로 씩씩하게 돌아갈 채비들을 하는 것 같다. 작은 공간에서 만나 다른 삶을 얘기하며 어느덧 친구가 되고 내일을 사는 힘을 얻는 곳.그곳이 바로 동네 목욕탕이다.

김유정 < 민주당 국회의원 kyj207@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