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디아 교수는

미국 벤틀리대 마케팅 교수다. 지난해 9월 '깨어있는 자본주의 연구소(Conscious Capitalism Institute)'를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컬럼비아대에서 마케팅과 경영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까지 조지메이슨대에서 최고경영자 과정 프로그램을 운영했으며,벤틀리대 마케팅 기술센터 설립원장을 지냈다. 2003년에는 영국 마케팅 전문 연구소가 선정한 '뛰어난 마케팅 사상가 50인'에 선정됐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마케팅 저널' 등에 100편이 넘는 논문을 실었다. 저서로는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빅3법칙' 등이 있다. 2008년 한경이 주최하는 '글로벌 이노베이션 포럼'에 기조연사로 초청된 것을 포함,이번이 네 번째 방한이다.


사랑받는 기업 홀푸드의 감동경영

"3년 전 크리스마스 때 미국의 유기농식품 유통업체 홀푸드의 한 매장에서 전산시스템이 고장났습니다. 손님들이 물건값을 치르지 못해 볼멘소리가 새어나왔죠.이때 매장 총괄매니저가 나섰습니다. '우리가 잘못해서 불편을 드리고 시간까지 뺏었으니 고른 물건들은 모두 공짜로 가져가세요. 그래도 물건값을 치르고 싶은 분들은 그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

정부가 '공정사회'를 강조하면서 주목받고 있는 책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Firms of Endearment)》의 저자인 라젠드라 시소디아 미국 벤틀리대 교수(사진)는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공정사회 포럼'에서 이렇게 특강을 시작했다. 주제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온다-깨어있는 자본주의(conscious capitalism)'.

◆'공감(共感)과 감동 경영'이 기업생태계 바꾼다

시소디아 교수의 특강은 이렇게 이어졌다. "혼란은 순식간에 감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고객들은 홀푸드에 대한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죠.언론도 홀푸드를 '고객과 사회를 생각하는 기업'이라고 칭찬했습니다. 홀푸드가 손님들에게 받지 않은 물건값은 약 4000달러였지만,40만달러 이상의 홍보효과를 거뒀습니다. "

이날 특강에서 소개된 또 하나의 에피소드.2005년 11월9일,세계적 가구회사 이케아가 미국 매사추세츠주 남쪽 해변 스토턴에 첫 매장을 열었다. 이케아는 개장식을 앞두고 파란색과 노란색의 로고를 지하철에 붙이고 100만부 이상의 카탈로그를 지역 주민들에 나눠주는 등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쳤다. 첫 고객이 되기 위해 1주일 넘게 주위에서 캠핑한 사람도 있었고,멀리 애틀란타에서 온 고객도 있었다.

이날 이케아 매장에는 자그마치 2만5000여명이 찾았다. 35만㎡나 되는 주차장(축구 경기장의 6.5배)이 턱없이 부족했다. 이때 경쟁 관계인 조던스퍼니처와 코스트코가 주차장을 내주고 '이케아를 환영한다'는 광고까지 거리에 내걸었다. 고객과 종업원,공급업체,지역사회 사람들은 새로운 경쟁자를 맞는 두 업체의 태도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시소디아 교수가 소개한 홀푸드와 조던스퍼니처,코스트코의 공통점은 눈앞의 수익보다 '상생과 공동의 선(善)'이란 큰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많은 이익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받는 기업'이란 주가 순익 매출 등 수치 목표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society)와 협력업체(partner),주주(invester),고객(customer),직원(employee) 등 모든 이해당사자들의 이익과 행복을 극대화하는데 경영의 초점을 맞추는 기업을 일컫는다.

이런 기업들이 결과적으로는 주가와 순익 등에서도 그렇지 않은 기업들을 압도한다는 통계적 근거도 내놓았다. 시소디아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이 고루 존중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앞글자를 따 'SPICE(양념)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에는 환경(environment)을 더해 'SPICEE'라고도 부른다.

◆'사랑받는 기업'의 놀라운 성과

시소디아 교수는 기업들의 마케팅 효과를 분석하다가 우연히 '사랑받는 기업'을 발견했다. 마케팅에 많은 돈을 퍼부어도 고객 만족도나 신뢰도,직원의 충성도가 크게 높아지지 않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홍보조차 하지 않는데도 종업원과 협력사,고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수익성도 뛰어난 기업들이 있었던 것.그는 "이들 기업에는 우리가 모르는 특별한 리소스(resource)가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연구해봤더니 기업과 이해당사자들(SPICE)의 정서적 유대관계가 특별했다"고 말했다.

시소디아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을 선정하기 위해 소비자들에게 "당신이 그냥 좋아하는 것 말고 사랑하는 기업이 있습니까"란 설문을 통해 후보군을 추렸다. 그리고 이들 기업이 SPICE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심층조사를 벌여 구글,UPS,젯블루,스타벅스,존슨앤존슨,사우스웨스트항공 등 28개사를 뽑았다.

어떤 응답자는 "할리데이비슨이 문 닫는 것보다 내 왼팔이 없어지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높은 충성도를 보였다. 놀라운 점은 이들 기업의 수익성이었다. 지난 10년간 'S&P 500'지수에 편입된 500대 기업의 주가 상승에 따른 누적 투자수익률이 122%(년 8.3%)인데 비해 사랑받는 기업 중 상장 13개사의 누적투자수익률은 1111%로 9배나 높게 나타났다. 짐 콜린스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에서 선정한 기업 수익률(331%)의 3배를 웃도는 수치다.

◆"목적을 추구하면 수익은 따라온다"

시소디아 교수는 "사랑받는 기업은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추구하고,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해 시너지를 끌어내며,자기만의 비즈니스 문화를 갖고 있다"고 요약했다. 그는 대표적인 모델로 홀푸드를 꼽았다.

"홀푸드는 회사와 고객,종업원,주주 등 SPICE가 모두 의존관계에 있다고 보고 '상호의존선언문'을 발표해 실천하고 있습니다. CEO나 임원의 보수는 다른 직원의 19배 이상을 받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일하는 목적이 돈이 아닌 기업문화 확산이기 때문이죠.스톡옵션도 임원에게는 7%만 주고 나머지 93%는 직원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심지어 가축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양육 환경까지 규정해두고 있습니다. 마케팅 비용은 미국 기업 평균의 10% 수준만 썼고,마케팅 담당 임원은 아예 없습니다. 그래도 10년간 누적수익률이 1800%로 미국 식품유통업계 중 최고를 기록했습니다. "

이 밖에도 목적중심으로 '깨어있는 자본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기업으로 구글과 사우스웨스트항공,등산용품업체 REI 등을 예로 들었다. 구글은 '사람들이 세상의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이상과 목적을 갖고 있고,40년 가까이 흑자 행진을 하고 있는 사우스웨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는 이념을 갖고 있다. REI는 '사람을 다시 자연과 연결시키겠다'는 목적을 전파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고객이 목적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경쟁사 제품도 소개해준다. 인도의 한 식용유 업체는 '우리의 목적은 인도인들의 심장병을 줄이는 것'이라고 발표한 뒤 수익이 급증했다.

◆새로운 패러다임 '깨어있는 자본주의'

'정글의 법칙'이 작용하는 비즈니스 생태계에서 성과를 목표로 하지 않는데도 더 높은 성과를 내는 비결은 뭘까. 기존의 자본주의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시소디아 교수는 잭 웰치 전 GE(제너럴 일렉트릭) 회장을 만나 "사랑의 기반에서 더 뛰어난 비즈니스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하자 "공산주의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받는 기업의 전체 매출은 줄지 몰라도 순이익률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그 이유로 종업원들의 이직률이 크게 줄어 채용과 교육,조직관리 비용이 절약되고 열정과 창의력을 쏟아내기 때문에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것.노사관계도 좋아져 파업이 사라지고 노사 관련 법률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서비스를 경험할수록 고객의 충성도도 높아져 입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특히 사랑받는 기업은 경제적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시소디아 교수는 눈앞의 수익을 위해 납품단가를 쥐어짜다 좋은 협력업체를 놓친 GM을 반면(反面)교사의 예로 들며 "납품가를 올려주면 당장은 이익이 줄겠지만,협력사들이 경쟁적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기 때문에 결국 수익성도 올라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참여자들의 교육수준이 향상되고,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게 되는 등 새로운 가치체계가 형성되고 있지만 기업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지난 10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경영 모델을 이제는 '깨어있는 자본주의 모델'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


시소디아 교수 선정 '사랑받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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