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최근 자유무역을 주제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응답자의 53%가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에 해가 된다"고 답했다. 자유무역이 확대될수록 일자리가 위험해진다는 게 응답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지지부진한 경기 회복과 높은 실업률이 미국인들에게 중국이 환율을 조작해 자신들의 일자리를 '도둑질'해간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분석이다.

이 설문조사는 글로벌 경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많은 나라가 재정적자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실업 문제도 좀처럼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둔화된 민간 소비 역시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모습이다.

2008년 11월 이후 각국 정부는 645건에 달하는 새로운 무역제한조치를 도입했으며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각국 정부가 위기 탈출을 위해 보호주의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한층 강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 압박하는 신(新) 보호주의 물결

오는 10~11일 열리는 서울 주요 20개국(G20) 비즈니스 서밋이 첫번째 주제로 '무역과 투자'를 선택한 것은 보호주의 확산 방지와 관련한 논의가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호주의가 한층 강화되면 글로벌 기업들의 사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강도 높은 발언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무역과 투자' 부문 소주제는 빅터 펑 리&펑그룹 회장이 컨비너(의장)를 맡은 '무역 확대 방안',피터 브라벡 네슬레 회장이 주도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스티븐 그린 HSBC 회장이 담당하는 '중소기업 육성' 등이다.

주요 기업 CEO들은 우선 각국 정부가 새로 도입한 무역제한 조치에 우려의 뜻을 표할 것으로 보인다. 10년째 끌어온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 다시 임해달라는 주문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출범한 DDA는 우루과이라운드(UR)의 뒤를 이어 농업과 비농산물,서비스,지식재산권 분야의 무역자유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출범 당시에는 2005년 이전 타결을 목표로 내세웠지만 여전히 시한 연장만 거듭하고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 활성화에 대한 주문도 예정돼 있다. 외국인 직접투자는 유치 국가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만큼 각국 정부가 투자 유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올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신흥 개발도상국의 직접투자 활성화 문제도 논의한다.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 개도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비중은 17%에서 47%로 높아졌다.

중소기업 문제를 소주제로 포함시켰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조직위 관계자는 "전 세계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중소기업 관련 주제를 의제에 포함시켰다"며 "기후 변화 이슈에 대응하고 고용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금융개혁이 경제성장 저해하지 말아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금융 부문은 그동안 민간 분야의 논의 참여가 배제돼 왔던 분야다. 비즈니스 서밋이 이 이슈를 대주제로 다루는 것은 각국이 출구전략을 펴는 과정에서 민간 부문과의 공조가 절실해졌다는 판단에서다.

비즈니스 서밋 금융 분과는 '금융과 실물경제'(컨비너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 대표),'출구전략'(요제프 아커만 도이체방크 회장),'인프라 · R&D 투자'(마쿠스 발렌베리 SEB 대표) 등으로 구성된다. 참가자들은 '금융과 실물경제' 소주제 토론을 통해 지나친 규제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자본 이동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금융규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인프라 · R&D 투자' 소주제 참가자들은 인프라 및 자원 개발 투자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예정이다. 인프라 개발은 투자액 대비 1.6배의 GDP 상승효과를 가져오는 만큼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견해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각국의 인프라 투자 수요는 향후 10년 동안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재정이 악화되면서 투자 재원이 부족한 상태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