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공정사회 '가면' 쓴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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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주변에서 회자되는 얘기가 하나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100가지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 금배지를 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우선 오피스텔 수준의 개인 사무실이 제공되고 4급 보좌관을 포함해 7명의 비서가 지원된다. 인턴 두 명까지 합하면 9명이다. 연 1억원 정도의 세비에 정책개발비,차량유지비 등 이런저런 명목의 활동비는 기본이다. 법안을 발의할 수 있고 정부를 상대로 항시 질문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무료로 철도 등도 이용할 수 있다. 1년에 1억5000만원(선거 없는 해)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입에는 날개가 달린다.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지지 않는다. 면책특권이다. 국회에서 무책임한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는 건 면책특권을 악용한 결과다. 정치가 실종되고 여야간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중요한 빌미를 제공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면책특권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죄를 짓더라도 현행범이 아닌 이상 회기 중에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불체포특권이다. 비리의혹을 받는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가 일상화된 건 불체포특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특권이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은 행정부에 대한 무한 견제권한이다. 대표적인 게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다. 청문회장에 서는 후보는 말 그대로 고양이 앞의 쥐다. 한나라당이 야당시절 낙마시킨 총리 · 장관 후보자만 7명이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엔 민주당이 총리 후보자 등 7명을 끌어내렸다. 낙마 사유는 다름아닌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의혹 등 도덕성 문제였다.
국정감사에 임하는 의원들의 기세도 청문회 못지않다. 국감에서 혼쭐이 난 장관이 한둘이 아니다. 타깃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다. 의원들이 공직사회에 강도높게 요구하는 게 다름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솔선수범하는 자세)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논란이 불거진 이후엔 그 목소리가 더욱 컸다. 전직 장관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음은 물론이다.
정부에 공정사회의 칼날을 들이댔던 정치권이 최근 특채의혹에 휩싸였다. 의원 10여명이 4,5급 비서진에 동생이나 딸 조카 등 친인척을 채용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4급 보좌관에 20대인 국회의원의 아들도 들어있었다. 일부 의원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며 억울해했다. 여야 정당은 약속이라도 한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외교부 특채의혹을 성토했던 때와는 대조적이다. "잘못됐으니 개혁하겠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국회는 예나 지금이나 개혁 무풍지대다. 행정구역 개편이 여야 야합으로 물거품이 된 게 얼마 전이다. 지역구도 타파를 외치면서도 이와 직결된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정치권이다. 의원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 앞에 개헌 등 정치개혁은 공허한 메아리다. 맥빠진 국감이라는 비판에 여야는 한목소리로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몇 년간 해온 말과 토씨 하나 틀린 게 없다. 아마 내년에도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바뀌지 않는 게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우리 정치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
처음 금배지를 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우선 오피스텔 수준의 개인 사무실이 제공되고 4급 보좌관을 포함해 7명의 비서가 지원된다. 인턴 두 명까지 합하면 9명이다. 연 1억원 정도의 세비에 정책개발비,차량유지비 등 이런저런 명목의 활동비는 기본이다. 법안을 발의할 수 있고 정부를 상대로 항시 질문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진다. 무료로 철도 등도 이용할 수 있다. 1년에 1억5000만원(선거 없는 해)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도 있다.
이뿐이 아니다. 입에는 날개가 달린다.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대해 국회 밖에서 책임지지 않는다. 면책특권이다. 국회에서 무책임한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는 건 면책특권을 악용한 결과다. 정치가 실종되고 여야간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중요한 빌미를 제공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면책특권이라는 얘기다.
게다가 죄를 짓더라도 현행범이 아닌 이상 회기 중에는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 불체포특권이다. 비리의혹을 받는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가 일상화된 건 불체포특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결과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특권이다.
이보다 더 큰 특권은 행정부에 대한 무한 견제권한이다. 대표적인 게 인사청문회와 국정감사다. 청문회장에 서는 후보는 말 그대로 고양이 앞의 쥐다. 한나라당이 야당시절 낙마시킨 총리 · 장관 후보자만 7명이었다.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은 뒤엔 민주당이 총리 후보자 등 7명을 끌어내렸다. 낙마 사유는 다름아닌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의혹 등 도덕성 문제였다.
국정감사에 임하는 의원들의 기세도 청문회 못지않다. 국감에서 혼쭐이 난 장관이 한둘이 아니다. 타깃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다. 의원들이 공직사회에 강도높게 요구하는 게 다름아닌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솔선수범하는 자세)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논란이 불거진 이후엔 그 목소리가 더욱 컸다. 전직 장관 등 관련자들이 줄줄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음은 물론이다.
정부에 공정사회의 칼날을 들이댔던 정치권이 최근 특채의혹에 휩싸였다. 의원 10여명이 4,5급 비서진에 동생이나 딸 조카 등 친인척을 채용한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4급 보좌관에 20대인 국회의원의 아들도 들어있었다. 일부 의원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며 억울해했다. 여야 정당은 약속이라도 한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외교부 특채의혹을 성토했던 때와는 대조적이다. "잘못됐으니 개혁하겠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국회는 예나 지금이나 개혁 무풍지대다. 행정구역 개편이 여야 야합으로 물거품이 된 게 얼마 전이다. 지역구도 타파를 외치면서도 이와 직결된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외면하고 있는 것도 정치권이다. 의원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 앞에 개헌 등 정치개혁은 공허한 메아리다. 맥빠진 국감이라는 비판에 여야는 한목소리로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몇 년간 해온 말과 토씨 하나 틀린 게 없다. 아마 내년에도 같은 말을 듣게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바뀌지 않는 게 한 가지 있다면 바로 우리 정치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