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중심을 흐르는 리피 강변의 국제금융센터(IFSC).'켈틱 타이거(Celtic Tiger)'로 불렸던 아일랜드 경제발전 신화의 주역으로 평가됐던 이곳에는 지금 입주사 모집 광고 간판이 내걸려 있다. 현지 안내를 맡은 데이비드 바이른 엔터프라이즈아일랜드 팀장은 "2008년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작된 부동산 시장 침체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더블린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비싼 볼스브리지 지역의 한 오피스 빌딩은 최근 1200만유로에 매각됐다. 금융위기 전 최고가 2700만유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이곳에 있는 A국 대사관저 역시 1000만유로까지 갔던 것이 지금은 300만~400만유로에 호가되고 있다.

볼스브리지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더블린 시내 곳곳에 주택이나 상가 등을 팔거나 임대한다는 표지판이 나붙어 있다. 하지만 수요는 거의 없다. 인구 430만여명인 아일랜드에서 주인을 찾지 못한 '유령 부동산'이 30만건에 달한다는 현지 보도까지 나왔다. 주택 가격의 100% 이상 대출해주던 은행들은 이제 대출 자체를 극도로 꺼린다.

신용평가사들의 부정적인 평가가 잇따르는 것도 부동산값 하락 영향이 크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이달 초 아일랜드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낮췄다. 무디스 역시 "지난 7월에 이어 신용등급을 다시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최근 경고했다.

경쟁적으로 부동산담보대출에 나섰다가 엄청난 부실을 떠안은 앵글로아이리시뱅크를 비롯해 얼라이드아이리스뱅크,뱅크오브아일랜드 등을 정상화시키는 것이 아일랜드 정부로서는 '발등의 불'이다. 여기에 필요한 구제금융 비용이 400억~500억유로에 달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로 인해 올해 아일랜드 재정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32%로 급증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톰 하디만 ASIA(Asia Studies Ireland Association) 회장은 "저금리가 초래한 거품 붕괴로 부동산 가격이 50% 이상 폭락했지만 시장이 언제 살아날지 아직도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발표된 2분기 성장률까지 -1.2%를 기록,'아일랜드발 금융위기'가 발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아일랜드가 국가부도 등 최악의 사태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수출 등 경제 펀더멘털이 포르투갈이나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PIGS 국가들보다 훨씬 튼튼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지난 1분기 수출은 경기 회복과 유로화 약세 등에 힘입어 전기 대비 6.9% 증가했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맡고 있는 바이른 팀장은 "제약 정보기술(IT) 낙농 등의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다"며 "지난 1분기에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전기 대비 2.7%의 성장률을 기록한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4.6%에 달했던 재정적자 규모를 2014년까지 3%로 축소하기 위해 아일랜드 정부가 대대적인 긴축에 나선 것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다음 달 공식 발표될 긴축안에는 공공부문 임금 13% 추가 삭감과 소비세 인상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더블린(아일랜드)=서욱진/이관우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