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필기인식 솔루션업체 디오텍은 '기술 드라이브형' 창업 사례다. KAIST 전자계산학과 출신인 도정인 사장은 대기업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이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치과용 임플란트 국내 시장의 선두 주자인 오스템임플란트는 '비전 드라이브형' 기업이다. 치과의사인 최규옥 사장은 소비자인 의사들의 욕구를 파악한 후 '의사들과 함께 성장하며 행복한 진료행위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비전을 내세웠다.

중소기업학회장이자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인 이장우 경북대 경영학과 교수가 쓴 《스몰 자이언츠 대한민국 강소기업》은 우수한 국내 중소기업의 체질을 분석한 책이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이나 IT벤처기업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실리콘밸리 기업,매출 및 고용자 수 증가율이 3년간 평균 20% 이상인 '가젤형 기업' 등과는 구별되는 한국형 강소 기업들을 '스몰 자이언츠(작은 거인)'로 명명했다.

구체적으론 종업원 300명 미만,자본금 80억원 이하,국내시장 1위 혹은 세계시장 5위권 내 기업들이다. 세계시장 점유율 1~3위,자국 내 1위의 시장 지배력을 가지며 매출액은 40억달러 이하인 '히든 챔피언'보다는 다소 느슨한 조건이다.

그러나 '스몰 자이언츠'들은 혼(spirit)과 속도(speed)를 핵심 역량으로 보유한다. 특정 분야에서 집약된 기술과 전문성을 획득한 히든 챔피언에 비해 '하면 된다'는 정신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신속하게 시장 변화에 대응해 나가는 속도전을 벌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2008년 24개,지난해 48개 등 총 70여개 강소기업을 연구했다. 창업 형태는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을 개발해 출발하는 '기술 드라이브형',명확한 비전과 뛰어난 사업설계 능력에 기초한 '비전 드라이브형',풍부한 마케팅 노하우와 시장 정보를 선점해 사업기회를 창출하는 '마케팅 드라이브형'으로 나눴다.

이 세 가지 요소는 다시 기업이 성장하는 패턴에 따라 '기술개척자 기업''장인 기업''건설가 기업''마케팅 기업'으로 나뉘는데 최고경영자(CEO)의 의사결정 스타일(열정형 · 합리형)에 따라 모두 8개 유형으로 세분된다. 열정형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구하며 적극적인 스타일,합리형은 기술개선 및 핵심 분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회사가 어떤 유전자(DNA)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빠질 수 있는 미래의 함정도 선명해진다. 기술개척자 기업은 지나친 '발명병'에 빠질 수 있고,원가절감과 완벽한 품질에 몰두하는 장인 기업은 소비자들의 트렌드를 놓칠 수 있다. 마케팅기업은 비슷한 상품들을 대량으로 출시하거나 너무 많은 시장으로 확장해 나가면서 시장표류형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식이다.

저자는 "대한민국 강소기업은 평균 업력(業歷)이 10여년에 불과하지만 일반 벤처기업보다 성장률이 2배가량 높고 수출 비중도 평균 50% 이상"이라며 "이들이 현재 전체 제조업의 0.2%(700개 미만)에 불과한 중견기업으로 커나간다면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는 밝다"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