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해 전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지금은 방송이 끝났지만 당시 제법 인기 있었던 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가족들이 함께 시청하는 시간대에 어린아이들이 나와서 연예인과 짝을 지어 퀴즈를 푸는 프로그램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어린이들이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퀴즈에 열중하는 모습도 귀엽고 어른은 좀처럼 생각하기 힘든 기발하고 재미있는 발언과 대답이 나올 때도 많아 몇 번 시청한 적이 있다.

그 퀴즈 프로그램의 사회자들은 눈이 작은 것이 특징인 한 코미디언과 웬만한 꽃미남 배우와 견주어도 손색 없을 정도로 잘생긴 남자 아나운서였다. 그날 출연한 한 어린이에게 두 사회자 중에 누구랑 한 팀이 되고 싶냐는 질문이 주어졌다. 어린이 출연자는 잘생긴 아나운서를 선택했고 그 이유를 묻자 코미디언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대답을 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박장대소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코미디언이 TV에 나와 못생긴 외모를 소재로 삼아 웃음을 주는 거야 워낙 자주 보는 풍경이었지만 그날은 어쩐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세상의 때가 많이 묻은 어른들이 그랬다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무개는 못생겨서 싫다'는 식의 발언을 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어른이 고쳐줘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엔 못생긴 외모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 건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 아니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것 같다. 누가 봐도 흠잡을 데 없이 잘생겼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용모를 타고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외모 콤플렉스 한두 가지는 갖고 있을 것이다. 만일 그런 콤플렉스를 다른 사람이 지적하고 웃는다면 아주 기분 나빠질 것이 당연한데 이상하게도 용모를 소재로 하는 농담이나 TV 코미디에 대해서는 모두 무척 관대하다.

방송에서 늘 못생긴 사람은 놀려대고 예쁘고 잘생긴 외모만을 치켜세우다 보니 얼짱 몸짱 열풍 같은 외모 지상주의가 갈수록 심해지고 부자연스러운 방법을 통해서라도 예뻐지고 날씬해지겠다는 젊은이들이 자꾸 늘어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말끔한 용모와 좋은 인상이 경쟁력에 보탬이 된다는 걸 부정할 수 없는 요즘 세상이다. 타고난 외모가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면 개성을 살리고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을 찾는 식으로 자신을 개발하고 보완하는 자세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외모 관리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만큼 또는 그 이상을 자신만의 실력을 개발하고 내면의 충실을 기하는 데에도 힘쓴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허정범 < 현대하이카다이렉트 사장 jbhuh@hicardirec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