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 등 주요국 통화당국이 금리 인하와 통화 가치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양적완화 정책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그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자국 통화를 낮게 유지하려는 통화전쟁이 격화하면서 정책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양적완화 정책이 세계 경제에 혼란만 초래할 뿐 경제 회복에 전혀 효과가 없다"(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얀 하지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재정정책 콘퍼런스에서 "국채 등 자산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정책이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1조달러 규모의 국채를 매입할 것으로 예상하는 그는 "이 같은 조치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0.25%포인트 떨어지고,0.2~0.3% 내외의 추가 경제성장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제로(0) 금리 정책으로 복귀한 일본도 당초 예상했던 시장 개입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자 당황하는 모습이다.


◆통화 정책 한계론 확산

벤 버냉키 FRB 의장과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은행 총재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피하고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추가적으로 양적완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시장에서는 11월 초 열리는 금리 회의에서 국채 매입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추가 양적완화 조치가 미국 경제의 회복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적지 않다.

하지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양적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내년 상반기 미국 경제가 1~2% 내외의 낮은 성장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8월 9.6%였던 실업률은 10%대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작년 10월의 실업률 10.1%를 넘어설 수도 있다. 칼 왈시 캘리포니아대 교수도 최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현대 경제에서 통화당국의 양적완화 조치가 정확히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실증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상승해도 무역적자 등 미국 경제가 처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재 예일대 선임연구원으로 활동 중인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은 "미국 달러화 가치는 2002년 초 이후 전 세계 통화 대비 평균 23% 하락했지만 미국은 무역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과의 교역에서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는 90여개국에 달한다.

◆엔화가치 15년 만에 최고 수준

일본이 엔고 저지를 위해 제로 금리를 부활시키는 등 강도 높은 금융완화책을 발표했지만 엔화 강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6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장중 한때 달러당 82.75엔까지 치솟아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달러당 83엔대 초반을 유지하는 등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82엔대로 올라간 것은 지난달 15일 일본 재무성이 외환시장에 개입한 이후 처음이다.

일본은행은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0.1%이던 기준금리를 0~0.1%로 내려 4년3개월 만에 사실상 제로 금리로 복귀했다. 또 5조엔(약 67조원)의 자산매입기금을 설립하는 등 공격적인 금융완화책을 시행해 엔고에 제동을 걸려고 했다. 그러나 엔화 가치는 일본은행의 의도대로 내려가지 않았다.

일본은행의 엔고 대책이 먹히지 않고 있는 것은 시장 참가자들이 미국의 추가 금융완화책이 일본의 대책을 상쇄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경기 하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엔화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시중에 엔화를 풀기로 했지만,시장 참가자들은 미국이 경기대책으로 달러 공급을 늘리면 엔고 압력이 다시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중국 이어 일본까지 압박

미국은 최근 외환시장에 개입한 일본에도 각을 세웠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재무부 고위 관계자는 5일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과 관련한 질문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합의에 위배되는 행동"이라고 완곡하게 비판했다. G20 국가들은 지난 6월 캐나다 정상회의에서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무역수지 흑자 국가들이 수출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성장시켜 세계 경제 불균형을 시정하자는 데 합의했다. 그 같은 합의 정신에는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보장하는 것도 포함한 것이라는 게 미국 재무부의 입장이다. 재무부 관계자는 "국제통화기금(IMF)은 각국이 그런 합의에 맞게 환율정책을 이행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데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익원/도쿄=차병석/워싱턴=김홍열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