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가 5일 발표한 '새희망홀씨'가 '무늬만 서민대출'일 뿐 사실상 중산층을 위한 대출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출대상을 '신용등급 5등급 이하이면서 연소득 4000만원 이하'이거나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인 사람'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소득이 적거나 신용등급이 나쁜 서민들은 대출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이 은행들과 사전 상의 없이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에 사용하겠다고 정치권과 합의한 과정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새희망홀씨,대출대상 2000만명 넘어

은행권의 기존 서민대출 상품인 '희망홀씨대출' 대상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 또는 연소득 2000만원 이하인 사람이었다. 이번에 나온 새희망홀씨대출 대상자는 '신용등급 5등급 이하로 연소득 4000만원 이하인 사람' 또는 '연소득 3000만원 이하인 사람'으로 확대됐다. 그러다 보니 저신용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대출이라는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인신용평가(CB)회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국내 3800만명 신용인구 중 신용등급 5등급인 사람은 1038만명에 달한다. 6등급도 388만명이다. 반면 7등급 이하인 사람은 700만명에 그치고 있다. 신용등급만 따질 때 기존 희망홀씨대출 대상은 700만명이었던 반면 새희망홀씨대출 대상은 2126만명으로 1426만명 늘었다. 이러다 보니 은행들은 떼일 염려가 적은 5~6등급 사람에게 주로 대출해줄 것으로 예상된다.

소득규정으로 봐도 새희망홀씨대출은 다분히 중산층을 겨냥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소득 분위별 분포자료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중산층에 해당하는 4분위,5분위,6분위의 연소득은 3000만~4000만원이다. 이들은 종전 희망홀씨대출 대상이 아니었으나 새희망홀씨대출 대상자로 포함되게 됐다. 새희망홀씨대출 취급으로 종전 희망홀씨대출 대상이었던 저신용자와 저소득자의 대출기회가 줄어들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셈이다.

◆은행 5~6등급자에게 주로 대출할 듯

은행들은 '새희망홀씨'가 신용등급 5~6등급에 집중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 대상이 5등급 이하로 확대되면서 사실상 5~6등급에만 대출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7등급 이하인 저신용자들에게 대출해줄 경우 부실 우려가 높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출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경향은 이미 종전 희망홀씨대출 취급실적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지난 6월 말 현재 16개 은행이 취급한 희망홀씨대출액은 2조997억원에 달한다. 이 중 40.6%인 8519억원이 신용등급 1~6등급인 고신용자에게 대출됐다. 은행별로는 기업은행이 전체의 75.1%를 고신용자에게 대출해줬다. 우리은행도 절반이 넘는 54.8%를 고신용자에게 대출했다.

한 관계자는 "취급한 대출에서 부실이 발생할 경우 문책당하게 된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신용등급이 높고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대출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도 모르게 정치권과 합의

은행연합회가 새희망홀씨를 출시한 과정도 논란이 되고 있다. 신 회장은 은행들의 사전 동의 없이 홍준표 한나라당 서민대책특위 위원장을 만나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에 할당하겠다고 합의했다. 신 회장은 "정치권이 영업이익 10% 서민대출을 법제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정치권에 지나치게 끌려다녔다는 게 은행들의 지적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연합회가 미리 합의해놓고 나중에 은행장들을 불러 통보하는 형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안대규/정재형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