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가전업계 1위,100년 장수기업….미국 가전회사인 월풀에 따라붙는 수식어는 수없이 많다. 백색가전이란 용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세계 시장을 호령한 월풀.연간 매출액이 190억달러에 달하고 종업원 수만 해도 7만3000명에 이른다. 이런 월풀이 제힘을 쓰지 못한 시장이 있다. 바로 중국이다.

월풀은 1994년 중국에 진출했다. 근 15년 동안 수십억위안을 투자해 중국 시장에 공을 들였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중국 백색가전제품 시장 점유율이 고작 0.33%에 불과할 정도다. 글로벌 시장의 '거물'이 중국 시장에서는 한낱 '개미'에 지나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월풀의 실수 때문이다.

가장 큰 잘못은 본사에만 집중된 의사결정 방식에 있었다. 과거 중국 송나라는 전쟁을 할 때 모든 전술을 황실에서 결정했다. 장수들에게는 결정권이 일절 없었다. 전쟁터에서 장수는 황실의 허락을 얻은 뒤에야 군대를 움직일 수 있었다. 적군은 송나라 군대보다 빨리 움직였고,송나라 장수들은 이들을 막아내기에 급급해야 했다.

월풀은 송나라와 같은 오류를 범했다. 그것도 15년이나 긴 시간을 말이다. 1995년 월풀은 2900만달러를 투자해 '베이징설화'사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이듬해 1500만달러의 적자를 내자 월풀은 다급해졌다. 손실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960만달러의 최신형 설비를 수입,역전을 시도하려 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 투자 건에 대해 미국 본사의 결재가 필요했다. 본사 경영진은 중국 설비투자를 놓고 장장 18개월을 고심했다. 그 사이 중국시장에 설립한 합작사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월풀의 또 다른 잘못은 고가시장을 공략하면서 저가품질의 제품을 제공한 것이다. 사실 월풀은 고가 전략을 잘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중국의 부자시장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중국에서만큼은 고가전략을 유지했다. 일견 현명한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나 월풀은 중국시장에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제품의 품질은 올리지 않았다. 낙후된 생산라인을 그대로 사용했고 기술 개선도 하지 않았다.

반면 월풀 경쟁사 지멘스는 중국에서 월풀과 다른 전략을 펼쳤다. 고가제품을 내놓으면서 품질을 함께 높였다. 중국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기능도 따로 개발했다. 그 결과 중국의 고가 냉장고 시장에서 지멘스는 월풀을 제치고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