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은 1998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전 1995~1997회계연도에 당기순이익이 난 것처럼 분식결산을 했다. 우리은행은 1996~1998년 쌍용건설의 기업어음(CP)매입,대출,회사채 원리금 지급보증 등을 했다. 하지만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기업개선약정에 따라 우리은행의 채권 중 상당액은 쌍용건설의 주식으로 출자전환됐다. 이에 우리은행은 "분식회계에 속은 결과 출자전환된 금액 상당 부분을 현실적으로 회수하지 못하는 등 600억원에 가까운 손해를 입었다"며 당시 분식회계에 관여한 대표이사를 상대로 약 48억원을 손해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가 최근 선고한 이 사건의 쟁점은 △워크아웃 절차에서 상계계약으로 출자전환을 했을 경우 채무가 사라지는 범위 △부진정연대채무자(쌍용건설)의 상계 · 상계계약이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회사 대표)에게도 효력을 미치는지 여부 등 두 가지였다.

재판부는 워크아웃 절차에서 상계계약으로 출자전환했을 때 채무 변제 기준이 주식의 발행가인지,발행 당시 주식의 시가인지 여부에 대해 "우리은행이 쌍용건설로부터 1주당 발행가 5000원으로 신주를 받고 대출금 등 은행의 채권과 상계하기로 합의했으므로,은행의 채권은 출자전환에 따라 (발행가를 기준으로) 소멸됐다"고 판결했다. 당사자들이 계약에서 정한 금액만큼 채권이 소멸하는 상계계약의 효과가 출자전환에도 적용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부진정연대채무자 중 1인(쌍용건설)이 채권자(우리은행)와 채무를 상계하기로 계약했다면,이 효력은 또 다른 부진정연대채무자(회사 대표)에게도 미친다"고 판시,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부진정연대채무란 공동불법행위 등 서로 별개의 원인으로 발생하지만,채무의 이행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진 채무 관계를 뜻한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부진정연대채무 관계에서 상계 및 상계계약을 통해 채무자 1인이 채무를 갚았다 해도 다른 채무자의 채무가 그만큼 변제된다고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가 은행에 진 채무를 상계나 상계계약으로 전액 갚았다 해도,분식회계 등 불법행위에 관여한 회사 대표는 별도로 은행에 손해배상을 해야 했다. 하지만 변경된 판례를 적용하면 회사가 갚은 금액만큼 회사 대표의 손해배상액은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우리은행이 회수하지 못한 15억여원에 대해서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사실상 원고 패소 판결했다.

최병호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출자전환에서 신주 시가를 기준으로 채무를 변제하는 회생절차와 달리 워크아웃에서는 신주인수대금(발행가 기준)만큼 변제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회사 대표나 이사들의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됐을 때 그 손해배상액은 출자전환된 액수만큼 감소한다는 판례"라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