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할리우드 톱스타로 군림했던 스웨덴 출신 배우 그레타 가르보는 스크린 밖에서는 숨어 살다시피 했다. 언론 인터뷰를 극도로 자제한 것은 물론 팬들의 사인 요청도 피하곤 했다. 심지어 주연 영화의 시사회 참석도 거부할 정도였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우수에 찬 신비의 여인으로 기억됐다. 워낙 철저하게 사생활을 감추다 보니 나중엔 성격 자체가 폐쇄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도 배용준 이영애를 비롯해 신비주의 전략을 쓰는 배우가 적지 않다. 성격 탓도 있겠으나 영화 속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 '보통사람'과 마찬가지로 아침에 부스스한 얼굴로 일어나 화장실 가고 세수하고,가끔 벌컥 화내는 모습 등이 대중에 낱낱이 알려져선 곤란할 게 아닌가. 재미 있는 건 신비한(mystic)이라는 말이 눈과 입을 닫는다는 뜻의 그리스어 'mystikos'에서 유래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감출수록 신비해 진다는 얘기다.

신비주의라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집안도 빠지지 않는다. '위대한 영도자'의 사적 이야기는 공식 선전물에 나오는 내용 말고는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기밀이다. 한 탈북자는 성혜림이 김정일의 부인이었다는 사실을 발설했다가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배우들의 신비주의는 이미지 관리의 방편이지만 북한에선 우상화 작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1974년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생모 김정숙까지 '항일의 여성 영웅'으로 포장된 것이 한 예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단숨에 '2인자'로 올라섰으나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사진만 겨우 공개됐을 뿐 나이도 아리송하다. 1984년생으로 전해졌지만 82년생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이름조차도 '정운'으로 잘못 알려졌을 정도다. 뚱뚱하고 다혈질이다,리더십과 승부근성이 강하다,북한의 '성지' 백두산에서 노상 방뇨를 할 정도로 안하무인이다 등 여러 설이 나돌지만 확실한 건 거의 없다.

이런 김정은이 권력의 핵으로 떠올랐으니 가뜩이나 오락가락하는 북한의 행보를 예측하기가 더 어려워질 게 뻔하다. 문제는 식량난으로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권력이양을 서두르다 보면 천안함 폭침 같은 돌출행동이 나올 우려가 있다는 거다. 우리 앞에 놓인 대북 과제가 정말 만만치 않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