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 이즈음,잡지사로부터 한 원로시인을 인터뷰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습작 시절 그 시인의 작품을 흠모한 까닭도 있고 평소 유쾌하고 재기 넘치신다는 입소문에 구미가 당겨서 응했다. 그런데 정작 인터뷰를 하겠다고 덥석 받았으나 개인적으로 그 시인의 문학세계에 대해 무엇을 물어야 할지 난감했다. 질문지를 작성해가서 하나씩 답안을 작성해오듯 할 수는 없는 일이고,시인이 내심 불편해 하시지나 않을지 자꾸 떠오르는 질문마다 소심해지곤 했다.

항상 문학은 답을 구하는 쪽보다 묻는 쪽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문학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지 상대에게 묻는 가혹함은 더욱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선생님께서 인터뷰를 거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잡지사로부터 선생님께서 흔쾌히 응하겠노라는 답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결국 사진기자와 동행을 했고 초인종을 누르고 나는 시인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직도 그날의 인상이 강렬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그날은 오래 기억되는 날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2층으로 된 독채는 나무로 만든 마감이 잘 된 구옥이었다. 인적이 드문 시골이지만 그 중에서도 시인의 집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곳이라 마당에 누워 노곤한 햇살에 졸고 있는 강아지의 숨소리마저 들릴 듯 고요한 곳이었다. 집안 곳곳에는 고즈넉한 그늘이 가라앉아 숨 쉬고 있는 듯했다. 여기저기 오래된 책이 쌓여있었고 선생님은 꾸부정하게 허리를 굽히시고 돋보기를 쓰신 채 거실에 앉아 바닥에 병풍처럼 늘어진 긴 족자그림을 보고 계셨다. 어림짐작해도 3m는 넘어 보이는 그림이었는데 파랗고 하얀 산봉우리들이 길게 옆으로 늘어져 있는 게 유화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내 눈동자를 순간 와락 움켜쥐는 것이 있었으니,그건 시인의 손에 있는 드라이기였다. 간밤에 네팔에서 온 한 화가가 머물렀는데 자신을 위해 그려온 그림이 아직 덜 말라 그림을 말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시인은 네팔의 산정에 있는,정확히 말하면 그림 속에 담긴 히말라야 봉우리를 하나씩 설명해주시면서 동시에 아직 덜 마른 봉우리를 드라이기로 하나씩 말리시곤 했다. 시인은 봉우리를 다 말리려면 하루는 걸리겠노라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 마지막 봉우리까지 가시려면 한참 걸리시겠는데요"라고 했다. 시인은 "응,그래도 구름은 거의 다 말랐어"라고 하셨다. 사진기자가 그 컷을 잡으려고 했지만 시인은 고개를 저으셨다. "뜨거운 바람이라는 게 땅은 금방 마르게 하는데 하늘 하고 이 산봉우리는 더디단 말이야.이게 칸첸중가라는 곳인데 해발이 아주 높다고"라고 하셨다. 나는 산 밑의 마른 땅을 내려다보았다. 땅은 축축해 보이지 않았다. 그림 속의 봉우리는 얼음처럼 차가운 빛으로 덮여 있었다. 봉우리들은 제 속에 계곡과 가파름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드라이어를 든 손은 봉우리의 측면을 말리시고 계셨지만 시인의 눈이 계곡과 보이지 않는 산 속,숲의 소리들을 더듬는 것이 느껴졌다.

"산세가 깊어 보이는데 어두워지기 전에 끝내야 하지 않을까요. " "눈동자가 어리고 순한 짐승 하나가 산정까지 도달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알아?" 인터뷰를 마치고 시인은 나를 배웅하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맘 때가 되면 고향생각이 무럭무럭 자라게 마련인데,전화를 걸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이 놈아! 부모는 죽음 소식이 너무 많아 삶의 소식을 늘 궁금해 하는 법이여.전화 좀 자주 혀라." 근황이란 우리 삶의 부록 같은 것이어서,문득 '그때 그때 챙겨놓을 것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경주 < 시인·극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