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 통신사 넘어 구글·페이스북 같은 기업 될 것"
"잘 생각해 보세요. "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대뜸 탁자 위에 놓인 서류 뭉치를 한장 한장 넘겼다. "이렇게 넘겨 보던 것을 e북(전자책) 단말기나 태블릿PC로 본다. 단순히 그것만일까요. 뭔가 달라야 합니다. 전자책을 읽다 인터넷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음악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지도를 통한 위치 검색도 가능해야 합니다. "

정 사장은 17일 서울 을지로 SK텔레콤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이제 통신사는 소비자에게 감동을 줄 만한 완전히 다른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이 서비스 플랫폼 사업자로 거듭나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구글 · 페이스북 같은 회사 돼야

그가 말하는 서비스 플랫폼은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페이스북'과 같은 모델이다. 페이스북은 전 세계 개발자들이 페이스북용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를 모두 개방했다. 그 결과,페이스북용 앱은 60만개까지 늘어났고 사람들은 이를 활용해 페이스북 안에서 뉴스를 골라 읽고 게임도 즐기며 광고도 하고 있다.

정 사장은 "SK텔레콤도 지금껏 무선 인터넷 포털 네이트를 운영하며 수많은 콘텐츠를 축적해 왔다"며 "하지만 이를 개방해 '에코시스템'(생태계)으로 키우지 못한 것을 통렬히 반성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애플 구글과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서비스 플랫폼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통신사들이 개방에 게을렀기 때문이란 진단이다.

그는 내비게이션 지도 서비스인 'T맵'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T맵은 실시간으로 교통,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경쟁력 있는 서비스"라며 "외부 개발자들이 T맵을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API(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환경)를 완전히 열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다 스마트폰으로 T맵을 켜서 주변 음식점을 검색하면 그 자리에서 관련 쿠폰을 얻을 수 있게 하고,가상 공간(전자 지도)에 자기 점포의 광고를 넣을 수도 있는 프로그램들이 개발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연말까지 T맵을 비롯해 네이트,싸이월드(SNS) 등을 SK텔레콤의 핵심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덧붙였다.

◆전자출판 사업도 나선다

SK텔레콤은 태블릿PC를 활용한 전자출판 사업에도 주목하고 있다. 정 사장은 "기존 e북 단말기는 종이책을 전자파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종이책과 e북은 '병콜라'와 '캔콜라'의 차이일 뿐"이라고 비유했다.

그는 "전자책이라면 책을 읽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란 문구를 클릭하면 해당 작품의 사진이 화면에 뜨는 정도는 돼야 한다"며 "이런 기초적인 것 외에 음악도 붙일 수 있어야 하고 위치 검색 등도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e북 단말기보다는 다양한 기능을 담을 수 있는 태블릿PC 쪽이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다.

그는 전자출판 사업은 통신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존 종이책 저자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겠지만 전자책은 통신사와 계약해야 한다"며 "책을 플랫폼으로 만들어 다양한 기능을 넣어 주는 게 SK텔레콤과 같은 통신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CTO도 영입 추진 중

SK텔레콤은 서비스 플랫폼 수출 등을 위해 '글로벌 CTO(최고기술책임자)'도 해외에서 물색하고 있다. 정 사장은 "세계 이동통신사들의 연합체인 GSMA에 가서 SK텔레콤의 플랫폼을 글로벌 표준으로 만드는 게 목표"라며 "전 세계 통신사들이 참여한 글로벌 앱스토어인 'WAC' 표준도 우리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SK텔레콤은 이와 관련,서비스 플랫폼 사업을 담당하는 PDF(제품 개발 팩토리) 조직도 신설했다. PDF는 중소기업이나 1인 개발자를 지원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돕고 우수한 제품을 발굴해 서비스 플랫폼으로 성장시키는 곳이다. T맵,네이트,싸이월드 등에 기반한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해 수많은 외부 아이디어를 끌어오겠다는 복안이다.

정 사장은 "PDF는 일종의 사내 벤처회사"라며 "팩토리(공장)란 이름에서 보듯 창의적 아이디어를 얼마나 현실화했느냐만 따지는 조직"이라고 소개했다. SK텔레콤의 '상상력 발전소'이자 '사관학교'로 키울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구글, 애플과 같은 회사들이 플랫폼 경쟁을 주도하고 있지만 사업 분야는 무궁무진하다"며 "앞서가는 사람이 가장 맛있는 것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