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서 의뢰인을 처음 만나 상담할 때 그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단계에서 수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경우 좀 난감하기도 하다. 이럴 때 필자는 의뢰인에게 "어떤 점에서 억울하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어본다. "진짜 억울하겠구나"하는 공감이 들면 주저없이 그 사건을 수임한다. 그러면서 억울함을 꼭 해결해주고 싶은 의지가 생겨난다. 공감이 의지를,의지가 노력을,노력이 묘안을 짜낼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직도 가끔 나를 즐겁게 해주는 사건이 있다. 오래 알고 지내던 세무사가 소개해준 사건이다. 세무사는 "억대의 증여세 사건인데,국세심판원까지 갖고 갔는데 기각됐다. 참 억울한 사정이 있는 분이니 구제할 방법을 꼭 찾아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당사자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다. 목욕탕 건물을 여관 건물과 교환했다. 목욕탕 건물은 남편 이름으로 등기가 돼 있었고,그것과 교환해 취득한 여관은 남편과 부인 두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를 했다. 그러자 세무 당국은 남편이 여관의 2분의 1을 부인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아 3억원대의 증여세를 부과한 사건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세무당국의 처분에 잘못된 것이 없었다.

당시 사무실을 찾아온 아주머니는 "부부가 가진 것 없이 결혼해 모은 재산인데 증여를 했다고 하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둘이서 염소 기르기,다방 운영 등 갖은 고생을 해 마련한 것인데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아주머니에게 "손을 한번 보자"고 했다. 정말 험한 일을 하신 분인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아주머니가 내민 손은 전형적인 '일하는 손'이었다. 억대의 세금은 그분들에게 너무 큰 부담이라는 마음이 들어 꼭 해결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자세히 듣고 사실관계를 확인한 후 "남편 이름으로 등기돼 있던 목욕탕이 사실은 부부가 같이 노력해 일군 공동 재산으로서 부인이 그의 지분을 남편에게 명의신탁했던 것이고,여관을 두 사람의 이름으로 등기한 것은 과거 명의신탁을 현실화한 것일 뿐"이라는 논리를 펴 승소 판결을 이끌어 냈다. 아주머니의 억울함에 공감했기에 논리를 구성하고 증거를 찾기 위해 들이는 수고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생각의 탄생'이란 책에 보면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의 말을 인용한 구절이 있다. "나는 사람이 새로운 이해를 얻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 '공감적인 직관' 혹은 '감정이입' 이라고 본다. 문제 속으로 들어가서 그 문제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 그의 말에 십분 이해가 갔다.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다면,고객의 문제를 좀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 아침 오늘도 인간관계에서,업무 가운데 공감이라는 첫 단추를 잘 끼워보리라 스스로 다짐해 본다.

우창록 <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crwoo@yulcho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