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짜리 펀드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삼성전자가 1조원의 지급보증을 서겠다는 뜻입니다. 앞으로 1차 협력사가 아니더라도 기술만 있다면 제대로 된 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충분히 자금을 지원해나갈 생각입니다."

박종서 삼성전자 상생협력센터장(전무)은 16일 주요 상생경영 실천방안을 발표하면서 보다 실질적이고 진정성 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협력사와의 상생에 많은 역점을 둬왔지만 최근의 사회적 논의를 계기로 밑바닥부터 다지자는 각오로 6월 말부터 경영진단을 실시했고 오늘 그 결과를 내놓게 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이날 제시한 방안은 △기존 1차 협력사들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하고 △2,3차 협력사들에 대한 실질적인 자금지원을 확대하며 △협력사 여부에 관계없이 중소기업 전반에 벤처 정신을 북돋우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거래 실적 30억 업체도 글로벌 기업 육성

기존 1차 협력사에 대한 지원은 향후 삼성전자와 더불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15년까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50개사를 발굴해 지원하는 '베스트 컴퍼니'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베스트컴퍼니는 연간 거래규모가 30억원 이상인 기업 가운데 기술력 등을 평가해 선정할 예정이다. 지금은 매출규모가 작더라도 앞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잠재력만 있다면 물적 · 인적 지원을 파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또 2,3차 협력사를 1차로 전환하는 문호를 넓히기로 했다. 1차 협력사와 연간 5억원 이상 거래하는 중소 협력사들 중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현금결제와 경영지원,신인도 제고 등의 혜택을 제공키로 했다. 현재 1차 협력사만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미래경영자 과정,경영컨설팅 지원 등도 2차 협력사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또 1차와 2,3차 협력사 간 상생경영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1차 협력사 평가시 2,3차 업체에 대한 대금지급 방식과 경영지원 여부 등을 심사하기로 했다. 이 밖에 수원 사업장 내에 '공동 기술개발지원센터'를 만들어 인력과 장비를 무상제공하고 인터넷신문고를 설치해 협력업체의 애로사항을 상시 점검하기로 했다.

◆원자재가격 변동 모두 흡수

삼성전자는 이번에 원자재가격 변동으로 발생하는 협력사들의 손실을 보전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협력사들의 경영애로 사항을 광범위하게 청취한 결과 원자재가격 등락에 따른 부담이 첫손가락에 꼽혔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에 따라 원자재를 직접 구매해 협력사에 나눠주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원자재를 구매하는 데 필요한 조직과 비용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이 제도는 1차협력사뿐 아니라 2,3차 협력사들도 원자재 구매물량이 많을 경우 원하는 회사를 대상으로 실시할 계획이다.
삼성전자 "1조 펀드, 기술만 있다면 2·3차 협력사까지 지원"

삼성전자는 우선 TV 세탁기 에어컨 등에 들어가는 철판,레진,동 등을 대상으로 실시하되 단계적으로 품목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도 최근 이 같은 방안을 발표하긴 했지만 이 방안은 제품 가격 부침이 심한 전자업체가 시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IT 제품 가격은 자동차와 달리 제품을 내놓는 순간부터 하락하기 시작한다. 실제 TV에 들어가는 원자재 가격은 거의 매년 오르지만 TV 가격은 1년이 지나면 반값이 되기 일쑤다.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달리는 TV나 2위인 휴대폰 사업부문의 수익률이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 관계자는 "여러 가지 재무적 · 기술적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지만 보다 실효성있는 지원체제를 구축하려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1조원 펀드는 벤처 활성화의 밑거름

삼성전자는 기업은행 출연분 8000억원을 합해 총 1조원 규모의 협력사 지원펀드를 조성,10월부터 설비투자,기술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키로 했다.

이 펀드는 삼성전자가 2004년부터 1조원 규모로 1차협력 업체를 지원해온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2,3차 협력업체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삼성이 직접 대출 심사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동안 기술은 있어도 자금이나 대출에 필요한 담보가 없어 사업화하지 못한 회사들도 이용할 수 있다. 사실상 삼성이 1조원 규모의 지급보증을 하는 셈이다. 따라서 이 펀드는 향후 중소 벤처기업들의 시설투자와 연구 · 개발(R&D) 경쟁력 제고에 적잖은 도움이 될 전망이다. 새로운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임시등록제'도 만들기로 했다. 협력사가 아니더라도 혁신적 아이디어나 기술을 갖고 있는 기업과 새로운 부품이나 장비를 공동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의 벤처 생태계를 새롭게 조성해보겠다는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