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통일세는 범정부 차원에서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이 아니다. 현 정부 초기 아이디어 차원에서 한두 차례 거론됐던 것을 이 대통령이 다소 갑작스럽게 꺼내 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세제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조차 "대통령이 제시했으니 독일 등 해외사례도 찾아가면서 검토를 시작하면 되지 않겠느냐"(재정부 관계자)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따라서 통일세 논의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통일세가 무엇인지를 정의하고 징세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해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회적 합의다. 국민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통일세는 현실화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통일세 얘기 왜 나왔나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이 대통령의 통일세 제안 배경과 관련,"통일 대비가 담론으로 그치지 않고 국민 스스로 통일의지를 갖고 준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통령이 오래전부터 고민해 오던 것"이라며 "내부에서도 준비가 덜 돼 있는 상황에서 꺼내는 것이 적절한지 논란도 있었지만 언젠가는 오게 될 통일에 대비해 비용에 대한 준비를 체계적으로 하자는 취지에서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임 실장은 "독일 통일 과정에서 보듯이 국민의 큰 부담이 예상되는 비용을 어떻게 하고 뭘 준비해야 하는지 본격 토의가 필요하다"며 "자연스럽게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가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독은 1990년 통일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매년 100억달러를 모금한 전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20년간 2조유로(약 3000조원)를 지출함으로써 입은 경제적 타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일세 도입 제안이 비단 현실적인 비용 문제만 고려한 것은 아니다"며 "통일을 전 국민의 공동 관심사로 이끌어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자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통일 비용 얼마나 되나

전문가들은 통일세는 통일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인 만큼 통일비용이 얼마나 될지를 산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통일비용에 대해선 다양한 추정이 나와 있다. 조세연구원은 2011년 초 통일된다고 가정할 경우 10년 간 남한 국내총생산(GDP)의 12%를 매년 통일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남한 GDP(1063조원)를 기준으로 했을 때 10년 간 1270조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은 2007년 남북한이 독일처럼 경제는 물론 정치적 통일까지 달성하는 경우와 경제적으로만 통합하는 경우 등 두 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통일비용을 추정했다. 한은은 독일과 같은 방식을 따를 때는 통일 후 22~29년간 총 5000억~9000억달러,경제적 통합만 할 때는 13~22년간 3000억~500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공감대 형성 쉽지 않을 듯

통일세를 도입키로 한다 해도 공감대 형성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의 세부담이 늘어나는 방식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고 이 경우 조세저항이 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경제연구원이 2008년 말 실시했던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서 "통일을 위해 국민 1인당 일정액의 부담을 져야 한다면 1년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부담하지 않겠다"는 응답률이 30.4%로 가장 높았다.

KBS가 최근 진행한 '국민의 통일의식 조사'에서도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통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4명은 통일 비용을 세금으로 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2009년 초 실시한 '국민통일여론조사'에서는 80% 이상이 통일이 중요하다고 대답했지만 통일에 수반되는 재정비용을 부담할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 정도만이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통일세 논의가 과연 지금 시점에서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재의 남북 간 대결국면에서 통일세 논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통일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도 있는 점을 감안하면 통일 비용에 따른 재정부담을 줄이기 위해 통일세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며 "다만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태/홍영식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