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코는 이미 '디플레' 대비 태세…美국채 비중 51%로 늘려
월가에서 디플레이션 논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세계 최대 채권 투자회사인 핌코 등 시장 흐름을 주도하는 주요 투자사들이 디플레이션 위험을 염두에 두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조정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헤지펀드인 폴슨앤드컴퍼니의 존 폴슨 최고경영자(CEO) 등이 인플레이션 우려를 반영해 미 국채를 내다팔고 금을 사들였으나 이제는 디플레이션에 대비한 투자전략을 세우는 곳이 늘고 있다.

◆시장 흐름은 디플레이션 대비 쪽으로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핌코의 빌 그로스 최고투자책임자(CIO)와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데이비드 테퍼,앨런 포니어 등이 디플레이션 발생을 잠재 위험으로 보고 투자 전략을 조정해왔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고정적인 이자를 챙길 수 있는 채권과 배당 성향이 높은 주식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한편 주식시장 손실에 대비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적극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 2390억달러 규모의 뮤추얼펀드인 핌코토털리턴펀드 운용을 책임지고 있는 그로스는 최근 들어 미 국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였다. 3월 말 33%였던 핌코 펀드의 미 국채 편입 비중이 지난달 말에는 51%로 높아졌다. 150억달러 규모의 헤지펀드인 아팔루사매니지먼트를 운용하는 테퍼는 자산의 70%를 회사채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 420억달러 규모의 포트리스인베스트먼트그룹,1070억달러 규모의 투자회사 GMO 등 투자사들은 고객들에게 디플레이션 위험을 경고했다.

미국 공급관리협회(ISM)는 지난달 미국 제조업 지수가 55.5로 전달의 56.2보다 하락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는 올 들어 최저치다. 미 제조업 지수는 지난 4월(60.4) 이후 세 달 연속 하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경기가 확장 국면은 유지했지만 속도는 지속적으로 둔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발표된 미국의 6월 소비자가격 지수도 1년 전에 비해 1.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지난달 30일 발표된 2분기 미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발표에서도 물가상승률이 1.1%로 지난해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이와 관련, "완전한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2일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예정된 연설에 앞서 미리 배포한 연설문을 통해 "미국 경제가 최악의 경기침체 뒤 '완만한 속도'로 회복을 계속하고 있다"면서도 "완전한 회복을 얻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핌코가 디플레이션 위험을 유독 크게 보는 이유는 미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둔화된 가운데 재정 확대 등 민간 수요 위축을 대체해줄 만한 정책 수단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재정 균형을 위한 정부의 긴축이 확산되면 미 경제성장률이 2% 밑으로 내려앉고,그렇게 되면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논리다.

인플레이션 때는 상품 투자가 바람직하지만 디플레이션 때는 어떤 투자 기법이 유용한지에 대한 뾰족한 답이 없다는 점이 문제다. 대공황 이후 장기간에 걸친 디플레이션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로스는 주식 배당수익,우량 회사 채권 등 현금 흐름을 감안한 투자가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일부 헤지펀드들은 주식시장이 하락하면 가치가 상승하는 ETF를 집중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수도 전기 가스 등 유틸리티주와 현금 흐름이 좋은 회사에 대한 투자도 디플레이션 우려에 대비한 유용한 투자 기법으로 제시됐다.

◆日 국채가격 7년래 최고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일본 채권시장에도 자금 유입이 크게 늘고 있다. 일본 장기금리(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2일 장중 1.040%로 2003년 8월14일(0.980%)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국채 가격이 그만큼 오른 것이다.

한편 최근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를 어떻게 봐야 할지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분기 미국 GDP 증가율이 2.4%로 1분기(3.7%)에 비해 떨어진 것은 표면적으로 경기 회복이 둔화된 것이라고 해석되지만 세부 사항에서는 이견이 잇따르고 있다"며 "미국 경제가 얼마나 빨리 성장하는지,얼마나 취약해졌는지,지난 몇 년간 미국 소비자 동향은 어땠는지에 대해 제대로 설명이 안 되는 미스터리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김동욱 기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