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 백악관 참모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그의 말실수를 수습하는 일이었다. 라디오 연설 직전 마이크가 꺼진 줄 알고 "지금 막 소련을 불법화하는 법률에 서명한 걸 알리게 돼 기쁩니다. 5분 뒤에 폭격을 시작할 겁니다"라고 한 말이 전파를 타 소동을 일으켰을 정도니 그럴 수밖에.취임 초 백악관 오찬에선 "제2차 세계대전이 정말 일어났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라고 얘기해 참석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분위기 파악 못하는 농담으로 자주 구설수에 오른다. 지난해 라퀼라라는 산악도시에서 지진이 났을 때 만사 제치고 이재민 텐트촌을 찾아 발빠른 대처라는 찬사를 받았으나 "주말 캠핑 왔다고 여겨라"는 말을 던지는 바람에 본전도 못찾았다. 한 여성 이재민에겐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면 선크림을 바르라"는 농까지 건넸다. 비난이 일자 발끈하면서 이렇게 변명했다. "그들에게 낙관주의를 심어주려고 했다. "

우리나라에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군'이다. 제주도를 거제도로,페널티킥을 코너킥으로,리쿠르트 뇌물사건을 요쿠르트 뇌물사건으로,우루과이 라운드를 우루과이 사태로 말하는 등 여러 차례 화제를 뿌렸다. 국회의원들도 만만치 않다. "노인들은 투표 안 하시고 집에 계셔도 된다"거나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나서 "술에 취해서 식당 여주인인 줄 알았다"고 말해 곤욕을 치렀다.

말실수가 문제가 되면 일단 부인해 놓고 '잘못 전달됐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가끔 실수를 인정하기도 하지만 뭐가 잘못됐느냐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어떻든 좋게 끝나는 경우는 별로 없다. 50여년간 백악관 출입기자로 일해온 헬렌 토머스 기자와 스탠리 매크리스털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얼마전 현직을 떠난 것도 말실수에서 비롯됐다.

강용석 의원이 대학생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성희롱과 여성비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당사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즉각 제명조치했고 여성단체는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아나운서연합회는 고소장까지 냈다. 이스라엘 속담에'당신의 입 안에 들어 있는 말은 당신의 노예다. 그러나 입 밖에 나오면 당신의 주인이 된다'고 했다. 잘못 뱉은 말 화살 되어 돌아오기 전에 조심하는 게 최선이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