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기업교육의 흐름 속에 미묘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리더십' 열풍의 뒤를 이어 멘토링과 코칭에 열중하다가 서서히 '자기 치유'(self healing) 내지 '자기 돌봄'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프로그램이 점증하고 있는 듯하다. 하루 종일을 일 속에 파묻혀 앞만 보고 달려온 지금까지의 직장생활 관행에 비추어 본다면 분명 신선한 파격이라 하겠다.

몇몇 사례들을 열거하자면,A기업에서는 남성 팀장만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제주도 올레 체험을 시도해 본 결과,교육생들의 만족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 넘어 열광적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B그룹에서는 교육 연수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죽음 체험'을 시연해본 결과,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서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 이후 하루하루의 소중함이 남다르게 다가오면서 일의 몰입도도 함께 증진되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자기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글쓰기 강연도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템플 스테이나 수목원에서의 명상 체험 및 자연과의 대화도 이미 호평 속에 진행 중이란 소식이다.

이러한 흐름이 현대사회의 특성을 투영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고 인정받는 일에 많은 가치를 두었으나,현대인들은 보다 내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고 가치의 근원을 찾는 경향이 있다. 인생의 의미를 사회적 성공에서 찾기보다 내면의 풍요로움과 순수한 기쁨에서 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최근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 및 조화도 현대인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음에 다름 아닐 것이다.

세계노동기구(ILO)가 매우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는 바 일과 삶의 균형은 다음 세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첫째,안정적 고용과 적정 수준의 보수를 보장해주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 갖기.둘째,좋은 부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건강한 가족을 꾸려가기.셋째,적절한 휴식과 의미 있는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것이다.

첫째 요건을 만족시키는 일이 주로 국가와 기업의 몫이라면,둘째와 셋째 요건을 충족시키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응하는 선진화된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작업과 더불어 개인과 가족 차원의 노력이 함께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공감대를 얻고 있는 만큼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그리고 구체적 방법을 찾는 일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가 아닐는지.실제로 친가족주의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수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대기업에서도 한 달에 한 번은 가족의 날로 정하여 조기 퇴근을 권유해보지만,정작 조기 퇴근 이후 직장인들이 가는 곳은 PC방,찜질방,아니면 주점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명분에 누가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어떻게 나온 집인데"라며 귀가 공포증을 여실히 드러내는 현실이나,정작 열심히 돈 버는 일 이외에는 가족을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다는 고백을 고려해보면, 실질적인 가이드를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이러한 요구와 맞물려 자기 치유 및 자기 돌봄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예상 외의 성과를 거두고 있음은 아니겠는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항상 일상에 쫓겨 감히 묻지 못했던 인생의 의미,굳이 찾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던 남편의 자리와 아빠의 자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면서,일의 진정성도 숙고하게 되고 내실있는 재충전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리라.이들 자기 치유 및 자기 돌봄의 흐름이 무늬만 남거나 한때의 유행으로 그치질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