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정유회사인 SK에너지의 구자영 사장은 지난달 20일 "아프리카의 한 기업과 '그린콜'(청정석탄 · green coal) 개발을 위해 기술 · 설비 도입을 위한 계약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에너지는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석탄액화기술(CTL)을 바탕으로 한 그린콜을 미래 주력사업으로 선정,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기로 했다.

SK에너지의 러브콜을 받은 아프리카 기업은 월드컵 주최로 한 달째 세계인의 주목을 끌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화학기업 사솔(Sasol)이다. 1950년 설립된 이 회사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침체국면에 빠졌던 지난해에도 전년보다 6% 늘어난 179억달러(약 22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남아공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하는 규모다. 2000년 이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20%에 이르고,영업이익률도 평균 20%를 웃도는 남아공 최대 기업이다.

자원부국 남아공에서 자원개발 자체보다는 가공에 주력하는 기업이 최대 기업이라는 점부터 관심을 끌 만하다. 선진국도 외면한 기술개발에 올인한 게 성장의 기반이었다.

◆선진국이 버린 기술에서 '금맥' 찾다

남아공은 석탄 금 우라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그러나 석유는 단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남아공 일반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이 나라 화폐 기준으로 ℓ당 7자르(약 1000원) 미만이다. 국제적으로 볼 때 싼 편이다. 사솔이 독자적인 CTL 기술을 통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하루 15만배럴의 합성석유 덕분이다.

원래 이 기술의 탄생지는 독일이었다. 1923년 베를린 카이저빌헬름연구소에서 최초 개발한 이 기술은 1930년대 말 독일 기업 앙글로바알로 넘어갔다. 앙글로바알은 석탄이 풍부한 남아공과의 합작을 통해 이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석유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2차대전 후 합작은 전격 중단됐다. 선진국들은 CTL 기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부터 중동 미국 등 전 세계 곳곳에서 풍부한 유전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탄을 액화시키는 과정에서 불순물들을 제거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으로 인한 추가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관심을 멀어지게 한 이유였다.

하지만 남아공 정부는 남들이 외면했던 이 기술을 앙글로바알로부터 인수했고,1950년 국영화학기업으로 출범한 사솔이 이를 떠안았다. 왜 그랬을까. 남아공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석탄 매장량이 많다. 풍부한 석탄을 바탕으로 독일 기업이 버리다시피 한 CTL 기술을 활용해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로 했던 것이다. 과거 남아공의 국민당 정부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로 제재를 받는 바람에 석유 수입이 쉽지 않았던 것도 여기에 매달리게 한 가려진 이유였다.

◆쏟아지는 해외의 러브콜

사솔은 1955년 합성석유 생산에 성공했지만 본격적인 생산이 시작된 때는 1970년대부터였다. 그 전까지 유가는 배럴당 2~3달러에 불과했다. 반면 CTL 기술을 통한 합성석유는 배럴당 평균 30~40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1973년 1차 석유파동은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2~3달러에 불과했던 유가는 순식간에 배럴당 30달러 이상으로 치솟았다. 사솔은 이때부터 수도인 요하네스버그 인근의 세쿤다에 대규모 공장 단지를 짓는 등 본격적으로 회사 규모를 확장했다. 설립 이후 CTL 기술개발이라는 외길에 매달린 노력이 드디어 빛을 발했던 것이다.

2000년대 중반 들어 유가가 70달러 이상까지 오르는 본격 고유가 시대에 접어들었다. 세계적인 석유회사를 비롯해 해외 각국의 에너지관련 기업들이 사솔에 러브콜을 보냈다. 근래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인 셰브론은 사솔과 5 0대 50의 합작투자로 조인트벤처회사인 사솔 · 셰브론을 설립해 CTL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영 석유회사인 카타르석유도 사솔과 합작해 2007년부터 하루 3만4000배럴을 생산하는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중국도 최근 사솔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하루 20만배럴의 합성석유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사솔은 CTL 기술에 대부분을 의존하는 것을 탈피하기 위한 변화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독일의 종합화학기업인 콘데아를 인수한 배경이다. 원료가공뿐 아니라 종합화학제품 생산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다. 사솔의 팻 데이비스 최고경영자(CEO)는 올해초 주주총회에서 "사업 다각화를 통해 회사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이익을 추구하는 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국제화 DNA도 적극 활용

사솔은 2008년 기준으로 전체 매출의 42.9%가 해외에서 나온다. 아프리카를 비롯해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38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정무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사솔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영국으로부터 전수받은 선진 경영기법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것이 국제화를 통한 성장 전략이다. 정 연구원은 "남아공을 식민지로 뒀던 영국의 기업들이 당시 추진했던 국제화 DNA가 남아공에 전수됐다"고 설명했다. 1910년 독립하기 전까지 남아공은 약 100년 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영국 기업들은 남아공의 풍부한 자원을 토대로 아프리카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 진출했었다.

사솔은 1990년 영국에 판매 사무소를 설립하면서 세계화에 나섰다. 1992년엔 홍콩을 통해 중국에도 진출했다. 사솔은 미국 나스닥 시장에도 상장될 만큼 이제 국제화도 됐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용어풀이 CTL(Coal to Liquid)

고체연료인 석탄을 섭씨 영상 500도의 고온과 고압에서 산소와 수증기에 반응시킨 뒤 액체로 만들어 석유로 변환시키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