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란 강요되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대지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것이다. 주는 자와 받는 자를 함께 축복하는 일이니 미덕 중의 미덕이며 왕관보다 국왕을 더 국왕답게 해주는 것이다. …그대는 정의를 호소하지만 정의만 내세우면 세상에 구원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

셰익스피어 작 '베니스의 상인'에서 판사로 변장한 '포샤'가 안토니오의 가슴살을 베어내겠다는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포샤의 간절한 청에도 불구,샤일록이 법 집행을 촉구하자 포샤는 그러라고 한다. 샤일록이 칼을 드는 순간 포샤는 외친다.

"살을 도려내라.단,한 방울의 피라도 흐르면 전 재산을 몰수하겠다. " 샤일록은 칼을 거두고 빌려준 돈이라도 받으려 들지만 포샤는 그걸로 끝내지 않는다. "저울이 1파운드에서 머리카락 한 올만큼이라도 기울면 재산 몰수는 물론 사형에 처하겠다. "샤일록은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다.

지혜롭고 당당한 여성법조인의 선조 격인 포샤의 후예는 많다. 미국 드라마 '성범죄전담반(Law & Order)'의 검사 알렉산드리아 캐봇과 후임인 케이시 노박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면서 범죄자 심판에 앞장선다. 이들 여성 검사들은 꼼꼼한데다 적당히 타협할 줄 모른다.

사법연수원생인 여성 검사시보가 경찰에서 피해액이 적다는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리하려던 사건을 파헤쳐 피의자를 기소했다고 한다. 목사 신분으로 선교회를 꾸려 경제적으로 어려운 60대 이상 노인들을 상대로 다단계식 사기를 친 인물을 추적,잡아들였다는 것이다.

여성 검사의 수는 계속 늘어난다. 2010년 사법연수원(39기) 수료자 가운데 법관은 69%(64명),검사는 58%(72명)다. 지난해엔 법관 71%,검사 63%였다. 이대로 가면 머지않아 여성 검사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설 테고 회식 2차는 으레 룸살롱으로 간다는 관행도 깨질 것이다.

자연히 스폰서 검사도 사라지고,지연 학연 등으로 엮이는 일도 줄어들 게 틀림없다. 적어도 지금보다 훨씬 깨끗하고 공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여성들의 경우 작은 일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비판도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일에 크고 작은 일이 따로 있기 어렵다. 어디서든 변화는 답답할 만큼 느린 듯하지만 일단 시작되면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 검찰조직도 다르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