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ㆍ레바논, 새 중동전쟁 위험 경고
美-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 연쇄 정상회담 일정도 차질


이스라엘군이 31일 지중해 공해상에서 가자지구행 국제 구호선의 승선자들에게 발포해 10여 명을 숨지게 한 사건으로 중동평화에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이달 초순, 지난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중단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협상을 재개시키는 데 성공했다.

비록 미국의 조지 미첼 중동특사가 양측을 오가면서 상대방의 의견을 전달해주고 조율하는 `간접' 대화 방식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 재개는 18개월 만에 성사된 일이어서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아랍연맹이 4개월로 시한을 설정한 이 협상이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이번 참사가 빚어지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협상에 악영향을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마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은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을 `학살'이라고 규정했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사에브 에레카트 최고 협상가는 유엔 안보리의 비상소집을 요구하는 등 이스라엘을 몰아붙였다.

아랍연맹은 오는 6월 1일 카이로에서 22개 회원국 회의를 소집, 이스라엘군의 발포 사건에 대한 대응책을 협의하기로 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회원으로 가입된 아랍연맹의 회의에서는 이스라엘과의 협상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공산이 크다.

이런 가운데,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과 레바논의 사드 하리리 총리는 이날 이스라엘의 구호선 공격이 중동 지역에서 새 전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두 정상은 이날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기본적인 인도적 규범과 국제법의 위반은 중동 지역을 전쟁의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두 지도자의 경고는 시리아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에 장거리 스커드 미사일을 제공했다고 이스라엘이 의혹을 제기,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나온 것이다.

두 나라는 이스라엘이 스커드 미사일의 헤즈볼라 제공설을 명분 삼아 새 전쟁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는 지난달 말 이스라엘이 제기한 헤즈볼라의 스커드 미사일 보유설이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던 사담 후세인 체제의 대량파괴무기(WMD) 개발설에 비교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터키와 이스라엘 간의 관계도 한층 더 악화했다.

2008년 12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침공을 앞장서 비난해온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이스라엘의 구호선 공격행위가 "비인도적 국가 테러"라고 몰아세우며 이스라엘과의 대립각을 세웠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 캐나다를 방문 중인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구호선 승선작전을 벌인 이스라엘군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네타냐후 총리는 오는 6월 1일 미국을 방문,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하기로 했던 일정을 취소하고 이날 이스라엘로 귀국하기로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애초 네타냐후 총리를 만난 뒤 같은 달 7일에는 압바스 수반과 만날 예정이었으나 이번 이스라엘군의 구호선 발포 사건으로 연쇄회담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다.

(카이로연합뉴스) 고웅석 특파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