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 등 우려.. 지속땐 금융시장 '직격탄'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면서 금융시장은 물론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유럽 위기에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강화되면서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증시 하락으로 글로벌 머니가 빠져 나가면서 증시는 하락했다. 대내외적으로 환율을 안정시킬 요인은 없고 상승을 부추길 요인만 있는 상황이다. 정부를 비롯해 일부 전문가들은 악재가 겹치면서 환율이 과도하게 상승한 것이라며 남북간 긴장 고조에 따라 확대된 불안감이 사그러들면 환율 폭등세는 진정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만 유럽 재정악화의 경우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환율 급등에 따른 물가 상승과 금융시장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대내외로 악재가 겹쳐있는 상황에서 환율을 예측하기 힘들지만, 기업과 정부 모두 올해 환율이 당초 예측한 범위 내에서 움직여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 하루 35원 폭등.. 겹악재에 투매까지 지난 25일 원.달러 환율은 하루만에 35원50전이나 치솟았다. 장중 1270원까지 넘어서기도 했지만 그나마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서면서 폭등세가 다소 진정됐다. 지난달 26일 1010원대까지 하락했던 환율은 이달 초 남유럽 국가의 재정문제에 대한 우려가 불거지자 1140원대로 올라섰고, 이번주에 천안함 사태에 따른 한반도 지정학적 위기까지 고조되면서 1200원을 돌파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최근 환율 상승의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유럽 재정악화 우려에 따른 원화 약세와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이다. 유럽 재정위기는 교역 규모 등 실물경제의 노출 정도는 크지 않지만 글로벌 달러화 강세와 미국 증시 하락 등 금융 채널을 통해 국내 실물경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스에서 불거진 재정위기가 스페인 최대 은행의 국유화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 신용경색이 확산되는 것 아니냐, 나아가 세계 경제가 더블딥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안전자산 선호 심리에 따라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고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는 약세로 돌아섰다. 특히나 원화는 유동성이 풍부한 편이어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자 역외 투기 세력까지 합류,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원화에 대한 투매가 이어지는 가운데 천안함 사태로 남북간 긴장까지 고조되면서 증시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연일 빠져나갔다. 외환시장 전문가는 "최근 유로존 문제 때문에 투자자들이 이머징 마켓의 자산을 철수하고 있는 가운데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해지면서 변동성이 더욱 커지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외국인들이 '바이코리아'를 이어온 덕에 국내로 달러가 꾸준히 들어왔지만 최근 외국인들이 매도세로 돌아서면서 공급원은 없어지고 달러는 줄어들게 됐다. 외국인들은 이달 들어 25일까지 6조원에 가까운 주식을 순매도하며 환율 급등을 주도하고 있다. 김윤기 대신증권 경제조사실장은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로 달러화가 강세를 띠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원화가치가 이렇게 급격히 하락한 것은 외국인 매매에 의존하는 우리 외환시장의 취약성을 다시 한 번 노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물가 상승 촉매되나.. 금융시장 악영향 우려 환율 상승, 즉 원화 가치 급락은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원화 값이 떨어진만큼 전보다 더 많은 돈을 줘야 해외에서 물건을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물가 상승은 단계적으로 소비자 물가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국내 경제가 이제 막 회복 흐름을 타려는데 환율로 인해 오른 물가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내수 소비가 위축되고 자본재 수입비용이 늘어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줄어드는 등 환율 급등이 국내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임경묵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그 동안 물가 상승 압력을 환율 하락이 완충해줬는데 환율 급등에 따라 부담이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원래 환율이 오르면 국내 수출기업들의 경우에는 국제시장에서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과 같이 대외 악재로 단기간에 환율이 급변하면 오히려 가격 책정의 불확실성이 커져 수출활동이 위축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짧은 기간에 환율이 치솟은 만큼 대내외 여건이 개선되면 다시 급락할 수 있다는 점에도 대비해야 한다. 금융시장 관계자는 "환율 변동성이 클수록 수출업체는 언제 달러 매물을 내놓아야 할지, 수입업체는 언제 대금을 결제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김승현 토러스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환율 급등은 수출주에 긍정적이지만, 경쟁 관계에 있는 유럽 국가들의 통화인 유로화도 약세를 보이고 있어 수출주들도 환율상승의 절대적 수혜를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환율 등락에 따라 기업들의 주가도 불안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거나 달러로 물품 값을 결재해야 하는 업체들은 환율이 급등하면 불리할 수 밖에 없다. 항공, 식품업종이 대표적이고 환율에 따라 매출 기복이 심한 여행 업계도 타격이 크다. 특히 7~8월 여름휴가 성수기를 앞두고 환율이 치솟으면서 항공.여행업계의 손실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환율이 오르면 외화 소비를 동반하는 해외여행을 즐기려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항공업계는 올해 들어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여객과 화물 모두 수요가 늘면서 매달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는데, 환율이 복병으로 떠올랐다. 항공기 리스와 유류비 등 비용의 상당 부분을 달러로 지급해야 하는 항공사들은 환율이 연평균 10원 오를 때마다 수십원씩 손실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환율 종가는 1250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환율을 각각 1200원, 1100원으로 예상했는데 이대로라면 큰 손실을 떠안게 된다. 식품업계도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가 부담이다. 환율이 연평균 100원 오르면 연간 1천억원의 환차손을 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주로 환율 상승기에 톡톡한 수혜를 입어왔던 자동차, 전자업종도 즐겁지만은 않다. 앞서 말했듯, 환율 상승이 인플레이션의 촉매 역할을 하게 될 경우 내수 소비가 위축되고 국내 자동차 수요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업계도 수입 부품과 설비, 원자재 등의 구매비용이 올라 환율 상승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환율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외국인들의 투자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며 "환율 급등세가 진정돼야 점진적으로 수출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은 주가하락에 환차손까지 입게 된 외국인들이 주식을 대량 매도하고 있지만 대내외 악재가 한 바탕 지나가고 나면 매수세를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남북관계 악화는 일시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유럽 재정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처럼 불투명성을 지닌 문제는 아니다"라며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기 때문에 쉽게 한국을 떠날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 전문가들 "상승 압력 강해.. 급등세는 진정될 것" 전문가들은 최근의 환율 급등이 유럽과 북한 두 가지 악재가 겹친데 따른 '과도한 반응'이었다지만 하락보다 상승 압력이 강하다는 데에는 의견을 모았다. 김재은 현대증권 연구원은 "지방선거 이전까지는 안보 리스크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환율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정부와 외환당국이 환율 안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내보인 만큼 환율이 크게 폭등하긴 어려울 것으로 관측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역외 저가 매수세와 증시의 외국인 매도가 함께 진행되고 있다"며 "당국의 개입 경계감도 강해 환율 향방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환율 상승세가 지속된다면 1260~1270원대에서 외환당국의 개입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폭등세는 둔화될 것"이라면서도 "외국인들이 증시로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는 환율 안정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대내외 악재의 뿌리가 뽑히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데다 환율이 급등할 때처럼 빠른 속도로 다시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대내외 변수와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로 환율이 상승했다지만 과도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원화가 강세기조를 되찾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오석태 SC제일은행 상무는 "유럽발 위기가 1조달러에 이르는 적극적인 구제금융으로 진정되면서 기존 '선진국 통화 약세-아시아 신흥국 통화강세'라는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주도의 세계경제 회복과 IT부문 호황이 이어지면서 수출호조가 지속될 것이라며 "한국 기업의 실적 호조에 외국인들의 자금이 주식과 채권으로 몰리면서 원화 절상 압력이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천안함 사태에 따른 남북간 긴장고조는 원.달러 환율의 향방을 결정할 요소가 아니라며 연말 원.달러 환율이 1050원, 내년말 950대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원 상무는 환율이 상반기 1130원, 하반기 1070원, 연평균 1100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채주연기자 jychae@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