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값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유럽연합(EU)의 그리스 재정위기 해소책에도 불구하고 시장 불안이 가시지 않으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몰린 데 따른 것이다. 국내 금 도매시장엔 수요자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안전자산 '금'값 사상 최고치

11일(현지시간) 런던금시장협회(LBMA)가 고시한 금 가격은 전날보다 26달러(2.17%) 오른 온스당 1222.5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작년 12월2일의 사상 최고치(1212.5달러)를 뛰어넘는 것이다. 같은 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된 6월물 금 선물 가격도 온스당 19.5달러(1.6%) 올라 1220.3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즉시 인도분' 가격은 온스당 1230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제 금값이 급등한 것은 EU의 1조달러 규모 유로존 구제금융 지원 계획에도 불구하고 유럽 경제침체로 유로화 가치가 더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된 데 따른 현상이다. 재정적자가 심각한 주요 선진국도 유럽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금이 대체 투자수단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인베스터스의 프랭크 홈스 최고 투자책임자(CIO)는 CNBC 방송에서 "금값이 앞으로 5년 내에 온스당 23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금 투자 매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일부 발빠른 국가들도 금을 사들이고 있다. 인도는 작년 10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금을 매입했다. 러시아도 외환보유액의 5%를 금에 투자하고 있다.

원자재 분석회사인 코리아PDS의 문용주 연구위원은 "미국 등 주요국 기업들의 이익이나 경제지표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재정위기로 인한 불안요소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여 당분간 안전자산의 금값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값 급등에 국내 거래 '뚝'

금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서울 종로3가 등 주요 금 도매시장엔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국내 도매가격의 기준이 되는 LBMA 시세가 전날 급등한 데다 이날 아침부터 북한이 자체 핵융합기술을 만들었다는 소식 등으로 원 · 달러 환율까지 1140원대로 오르면서 금 3.75g(한 돈) 도매가격(삼성귀금속선물거래소 · 24K 순금 기준)은 전날 18만1500원(부가가치세 포함)에서 이날 18만5680원으로 뛰었다.

정진수 삼화금은 사장은 "최근 금값이 계속 오르면서 반도체 제조업체나 용접,도금업체 등 공업용으로 반드시 필요한 곳 외에는 찾아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소매상 등 금 수요가 급하지 않은 곳은 환율과 금값이 안정되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다는 얘기다.

박치영 삼성귀금속현물거래소 회장은 "국제값 상승이 이어지면 국내 소비는 당연히 줄어든다"며 "2~3년 전 금값이 급등하기 전에 비해 매출이나 이익이 20~30%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도매상의 경우 산업용과 공업용 수요는 꾸준하고 도금한 고급제품에 대한 수요도 소폭 늘고 있지만,소매상은 타격이 크다는 설명이다. 금 3.75g이 15만~20만원까지 뛰면서 가장 큰 소매수요인 '돌 반지'가 4~5년 전부터 현금으로 대체되기 시작한 데 따른 것이다.

전국 1만여개의 귀금속 소매업소를 회원으로 가진 한국귀금속판매업중앙회 관계자는 "통상 돌잔치를 하면 반지를 20개가량 받았는데 최근에는 10개 미만으로 집계되고 있다"며 "회원들이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뉴욕=이익원 특파원/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