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유학기 기고를 요청받았을 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2년 MBA 과정을 유학이라 하기엔 쑥스럽다는 생각, 나이도 꽤 든 데다 준비도 제대로 안 돼 우왕좌왕 고생만 많았던 사람이 무얼 쓰나 하는 우려였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늦깎이로 공부를 시작하거나 준비가 잘 안됐지만 용감하게(?) 나가 공부하겠다는 분에게는 어쩌면 제 글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유학기를 쓰게 됐습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스탠다드차타드중권 대표이사 정유신] 사람마다 살아가면서 획을 그을만한 인생의 전환점(터닝포인트)이 있다. 그러한 인생의 변화에는 분명 계기가 있게 마련이고, 그 계기의 성격 또한 천차만별이기 마련이다. 내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경영대학원 (Wharton MBA)에 가게 된 계기는 지금 생각해도 특이하다. 대다수 유학생들처럼 유학을 결정하고 기간을 두고 공부했던 게 아닌, 어느 날 우연히 사건(event)이 계기가 되어 무조건 가겠다고 작정한 후 바로 유학을 간 케이스이기 때문. 지난 1995년, 나는 서른 일곱에 유학을 떠났다. 94년 11월까지는 막연하게나마 유학을 생각하며 토플 시험은 봤지만, 그 당시만 해도 경영을 공부해야할 지 경제를 공부해야할 지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었다. 날짜는 정확하지 않지만 94년 11월 말 정도로 기억한다. 와튼 MBA 졸업 후 한국에 들어와 여의도에서 근무하던 대학 동기에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와튼 경영대학장을 만나 보라는 것. 와튼 경영대학원 학장이 와튼 스쿨 지원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서울에 왔는데, 자기도 몇 명을 추천하려고 하니 인터뷰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마음은 고마웠으나 당시 내 유학 준비 상태는 간신히 토플 600점 턱걸이에, GMAT은 점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유신아, 일단 먼저 만나보고 유학 시험은 준비해도 되잖아.”라며 인터뷰를 독려해줬다. 당시 여의도에 위치하던 (주)Han Glass 이세훈 사장님이 와튼스쿨 한국동문회장으로 계셨는데, 그 다음날 비서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조금만 걸어오시면 되는데 오셔서 인터뷰하세요! 12월 6일이예요.” 당시 내가 근무했던 대우경제연구소도 여의도에 있었다. 개인 시간내기가 만만치 않고 항상 해야할 일이 많았지만 근처라 부담이 다소 줄었다. 그러나 걱정은 지금까지 준비해 온 내용이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다 서류 심사를 위한 GMAT 시험도 치뤄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꼭 도전해보고 싶은 열정이 가슴 속에서 피어났다. '그래. 이 정유신이 지금은 별로일지언정 꽤 장래성이 있는 놈이란 걸 보여주자.' 인터뷰를 어떻게 할까 고민을 거듭하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연결지어 면접에 임하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으니 그간 내가 쓴 보고서나 신문과 잡지에 보도된 원고와 사진도 준비해 보여주면서 얘기해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그리고 다행히도 면접 당시에 학장은 나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여줬다. 그날 내가 했던 내용 중에 지금도 기억나는 건 이 말이다. “와튼에 입학을 허가해 주신다면 지금의 저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영광입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제가 입학한 것이 와튼 스쿨에도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영어 실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내가 저 말을 했을 때 학장은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아직도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내 배짱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있게 인터뷰를 본 것도 본 것이지만, 와튼 MBA에 입학할 수 있게 된 보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 하루이틀 뒤에 일어났다. 처음에 인터뷰를 권유했던 친구가 “유신아, 학장과 졸업생이 모이는 점심 약속이 있는데 졸업생들이 많이 빠져버렸어. 수가 많이 부족한데, 너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재학생도 아닌 지원자가 같이 식사해도 되나 싶었지만, 친구는 “니가 맘에 들어서 두 번 인터뷰했다고 생각하면 되잖아.”라며 여러 차례 권유하는 차에 동반을 하게 됐다. 그리고 다행히 학장은 나를 반가워했다. 식사시간 내내 졸업생들과 학장의 유창한 영어 대화를 들으며 머릿 속에 뱅뱅 돈 생각은 ‘와튼에 가고 싶다. 아니, 꼭 가야겠다.’였다. 그 때 장소는 삼청동 가는 길에 위치한 한 한정식당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학장도 여의도로 가야 되니 내가 빨리 택시를 잡아 같이 모시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서둘러 택시를 잡아 졸업생들과 인사를 나누던 학장에게 같이 여의도로 가자고 요청했더니, 학장은 웃으면서 이세훈 당시 동문회장이 준비한 차량이 있으니 함께 이동하자는 것이었다. 순간 멋쩍어 얼굴이 확 달아올랐지만 같이 차에 올라탔다. 영어가 서투른 나를 배려하는 듯 천천히 이야기하던 학장이 갑자기 내 얼굴을 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와튼에 오고 싶냐고. 그 순간 외국인에게 진실을 얘기할 때는 눈을 바로 마주봐고 말해야 한다고 들은 기억이 나서 그 학장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와튼 스쿨에 꼭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오면 반드시 와튼의 자랑스런 동문이 되겠습니다."라고. 그 말을 들은 학장은 내게 GMAT은 시험을 보는 대로 보내고 일단 연말까지 에세이를 보내라고 했다. 내 와튼 유학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