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투자기업인 A사는 도시개발사업을 위해 경기도에서 토지 매입을 추진하다 난관에 부딪쳤다. 외국인투자촉진법(외투법)에 따르면 외투기업은 정부 ·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수의계약으로 국 · 공유지를 매입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제처는 "원래 국 · 공유지가 아닌 도시개발법에 따라 수용한 땅은 입찰로 팔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A사는 법무법인 광장에 도움을 요청했다. 광장은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을 완화해야 한다"며 도시개발법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를 설득했다. 이에 국토부는 지난해 6월 수용 토지도 외투기업에 수의로 매각할 수 있도록 도시개발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로펌이 법적 환경을 기업 친화적으로 바꾸는 데 조력자로 나섰다. 소송 대리나 법률 자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업 등의 요구를 반영, 입법 과정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추세다. 이른바 '입법 컨설팅' 수요가 확대되면서 대형 로펌들은 별도로 팀을 구성하는 등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광장은 행정부처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 변호사 4명으로 구성된 입법 컨설팅팀을 지난해 상반기부터 운영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법제컨설팅팀에는 변호사 12명이 소속돼 있다. 법무법인 세종의 입법자문팀은 전문 입법연구기관인 한국입법연구원과 지난해부터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법무법인 율촌의 법령지원팀에는 조세 전문가 및 변호사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로펌에서 지난해 입법에 관계한 사례만 줄잡아 90여건에 달한다. 별도의 팀을 두지 않은 로펌들도 태스크포스(TF) 등을 구성, 입법 컨설팅 업무를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수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법조계는 예상하고 있다. 비용은 난이도와 소요기간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억원대까지 다양하다.

입법 컨설팅 고객의 상당수는 기업 및 관련단체이지만 정부도 법률 입안 때 로펌에 자문을 요청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입법 컨설팅의 인지도가 높아져 입법 담당자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이종석 광장 변호사는 "예전과 달리 공무원들도 '이런 문제가 있었나'라고 적극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했다.

입법 컨설팅의 범위는 △법령 · 조례 제정 및 개정 △유권해석 △정부 규제의 사전 대응 등을 아우른다. 관련 법령이나 조례가 없거나 개정이 필요할 때는 다른나라 입법례에 대한 조사 등을 거쳐 정부나 국회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논리를 제공한다. 율촌은 외국계기업 B사 등의 의뢰로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비용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인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는 작업에 관여했다. 이경근 율촌 세무사는 "기업이 의뢰를 해오면 공익적인 측면이 있는지 살펴보고 다른 나라의 입법례들을 조사해 근거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관련 법령이 있을 때는 보통 유권해석으로 접근한다. 태평양은 주사약으로 수퇘지를 거세하는 면역적 거세법을 개발한 C제약회사를 대리해 축산법에 대한 유권해석을 받았다. 당시 법에 따르면 수퇘지 고기는 일률적으로 낮은 등급이 책정되지만 외과적 거세를 한 경우에는 등급 조정이 가능했다. 이에 태평양은 "기술 발달로 외과적 거세뿐 아니라 면역적 거세도 인정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또 업계를 규제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됐을 때 이를 수정통과 되도록 하는 등 사전 대응하는 일도 입법 컨설팅의 영역이다. 이준기 태평양 변호사는 "입법 컨설팅은 입법을 담당하는 공무원과 국회를 상대로 의견을 표명하고 법적 논리에 근거, 합리적인 설득을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고운/임도원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