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작년 초 경험했던 최악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전반적으로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1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전년 대비 7.8%에 달했고,우리 대기업들도 역대 최고 수준의 이익을 공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들은 경영위기를 선언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글로벌 경영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상징하는 좋은 예가 애플의 아이폰이다. 아이폰의 출현으로 모바일 폰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아이폰을 내놓은 애플은 10년 전만 하더라도 시가총액이 50억달러에 불과한 작은 IT기업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시가 총액이 6000억달러를 넘어 애플과는 비교가 안되는 세계 최강의 글로벌기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가총액이 그때의 반도 안되는 2700억달러 정도로 떨어졌고,애플은 이제 곧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을 넘어설 것으로 증권가는 예측하고 있다. 과거 10년 동안 애플은 아이팟을 시작으로 아이폰에 이어 최근에는 아이패드까지 성공적으로 출시해 승승장구해 온 반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렇다 할 신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애플이 성공적으로 개발한 신제품들은 천재적인 아이디어이긴 하지만,기본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애플을 본격적으로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던 아이팟도 원래는 우리나라 기업이 처음으로 개발했던 MP3 플레이어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것이다. 오늘날 세계 모바일폰업계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아이폰도 그동안 여러 회사에서 선보여 왔던 스마트 폰의 일종이다. 다만 소비자의 잠재적인 요구까지 정확히 파악하고 기대 수준을 넘어 감탄을 자아내는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아이팟의 출현으로 그동안 MP3 제품의 최초 개발로 승승장구하던 우리 기업은 한풀 꺾이고,작년까지만 해도 높은 수익력으로 세계 일류기업 평가를 받던 모바일폰 제조업체들도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애플뿐만이 아니다. 다이슨(Dyson)이란 회사는 세계 제1의 진공청소기를 생산해 기존 시장을 제압하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 세계 1등 기업이라고 해도 이제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제3의 기업에 의하여 하루 아침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제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싸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세계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끊임없이 소비자들을 감탄시키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거대한 공장이나 생산조직을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남다른 상상력과 감성을 가지고 모든 사람의 기대 수준을 넘어 감탄시킬 수 있는 창의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의 저자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대로 정보통신기술 발전으로 이제는 작은 기업일지라도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글로벌 대기업들은 세계 도처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들의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처 할 수 있는 방법은 거대한 기업일수록 융통성이 있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수평적인 조직구조로 많은 사람들이 동급의 수준에서 자기 생각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 훌륭한 기업지배구조란 이러한 기업문화를 만들어 내고,또 수용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말한다. 글로벌 기업이 아이폰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폰 같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글로벌 기업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주인기 < 연세대 교수·경영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