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라이어(Outliers)'를 쓴 말콤 글래드웰(47)은 밀리언 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독특한 시각으로 분석해 세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특정 분야에서 장인이 되려면 1만 시간의 훈련 기간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동작을 익히기 위해 1만 번을 연습한다는 김연아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렇다고 1만 시간의 도제생활(apprenticeship)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충분조건은 아니다. 때로 순간의 선택이 중요하고 새로운 세상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옛 사고를 버리고 새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자신의 업적)와 사랑에 빠지지 말고 앞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이 뭔지를 고민하는 게 인생에서의 발전이라고 설명한다.

작가들이 많이 모여 사는 맨해튼 웨스트빌리지 내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월가 금융사의 과잉자신감(overconfidence)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며 "하지만 불행히도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아 위기에서 벗어난 이들이 관행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가 금융개혁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최근 골드만삭스를 사기 혐의로 제소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가.

"제소했다고 소송에서 꼭 이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월가 금융사의 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한 정치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금융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가장 센 곳을 골라 압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불법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아도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

▼최근 한국에서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가 번역 출간됐다. 특이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주간지인 뉴요커의 기자로 근무하면서 10년 동안 쓴 글 중 19편을 묶은 것이다. 그중 한 에세이의 제목이 'What the dog saw'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 나온 개조련사 시저 밀란의 얘기다. 아무리 사나운 개도 그가 쳐다보면 순하게 길들곤 했다. 재미있는 현상은 시저가 뭘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가 개를 쳐다볼 때 개가 무엇을 보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책 제목에 '개(dog)'를 포함시키면 어쩐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것 같았다. "

▼19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글은 어떤 것인가.

"맨 처음 소개된 노점상(pitchman) 론 포페일이 미국 주방을 어떻게 점령했는지를 담은 글이다. 그는 창조력과 기업가정신을 동시에 발휘한 발명가였다. 자신의 창조력을 주방기구로 연결시켜 소비자의 마음을 잡았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필요한 게 창의력을 바탕으로 꿈을 이루겠다는 기업가정신 아니겠는가. "

▼재앙(금융위기)이 올 것을 예견한 '블랙 스완'의 저자이자 펀드매니저인 나심 탈레브의 얘기도 있다. 이후에도 가끔 그를 만나고 있는지.

"6년 전에 쓴 글인데,그의 예견은 적중했다. 그 글을 보면 2008년 말 금융위기가 왜 발생했는지 알 수 있다. 월가 금융사들은 잘못된 모델을 사용했고 투자 위험을 너무 가볍게 봤다. 6년 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상황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와 똑같이 투자했다면 나는 지금 훨씬 부자가 됐을 것이다. "

▼케첩 수수께끼에 관한 글도 눈길을 끈다. 겨자는 수십 종이 있는데 반해 케첩은 왜 한 종류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직관력은 어디에서 얻는가.

"식품점에서 일하는 친구와 점심을 먹다가 나눈 얘기에서 착안했다. 대부분의 경우 보통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글의 소재를 얻곤 한다. 그는 하인즈(세계 최대 케첩 가공업체)에 대적하려다 망한 기업이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케첩시장은 나눠 갖는 여타 시장과는 분명히 다른 시장이다. 저널리스트로서 귀를 활짝 열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더 많은 얘기를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료 조사와 리포팅 일체를 혼자서 한다. 기획 단계부터 자료 찾기까지 글을 쓰는 데 필요한 모든 작업을 스스로 하고 있다. "

▼책에서는 뛰어난 업무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을 뽑기가 쉽지 않다고 주장했는데,그렇다면 어떻게 사람을 채용해야 하나.

"가능하면 많은 사람에게 일을 시켜본 뒤 선발하면 된다. 50명이 필요하면 500명 정도를 임시로 고용해 보고 최종 50명을 선발하는 방식이다. 자료를 통해 성공을 예단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능력을 따져보는 채용 모델로 가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하지만 가장 유용한 방법이다. 수준 높은 자질이 필요한 과학자,엔지니어,최고경영자를 어떻게 그들이 잘할 것이란 예상만으로 뽑을 수 있겠는가. "

▼일각에서는 표본선정(sampling) 방법이나 지나친 일반화(generalization)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나는 저널리스트다. 항상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화(conversation)를 촉발할 수 있는 얘기를 쓴다. 결코 결론을 내리려고 글을 쓰는 게 아니다. 글을 쓰는 의도는 명료하다. 독자들이 특정 주제에 대해 사고하고 의견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100% 엄밀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의 잣대로 나와 내 글을 공격하는 것은 건전하다고 볼 수 없다. "

▼누구로부터 영감을 받아 글을 쓰게 됐나.

"작가였던 어머니다. 그녀는 나의 롤모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손에 닿는 책들은 모두 읽었다. 특정 분야를 골라 책을 읽지 않았다. 도서관에서도 책을 많이 읽었다. 체계화된 과정을 거쳤다기보다는 우연히 글쟁이가 됐다. "

▼인생에서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는 언제였나. (티핑포인트는 작은 변화들이 쌓여,또 다른 미세한 변화만 있어도 갑자기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된 상태를 지칭하며 말콤 글래드웰의 첫 저서 타이틀이다. )

"워싱턴포스트지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뒤 주간지인 뉴요커로 자리를 옮겼을 때다. 그때부터 확실한 나의 독자가 생겼다. 긴 호흡의 글을 쓰는 즐거움도 컸다. 한마디로 나의 생각과 색깔을 담는 글을 쓰면서 모든 게 바뀌었던 것이다. "

▼글의 편집 방향 등과 관련해 편집장과 의견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하나. 한편의 글을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떤 조직이든 보스와 의견이 다를 때가 있다. 나 역시 편집장과 시각이 다를 경우가 있다. 편집장은 글을 독자들에게 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이런 현실을 무시할 순 없다. 이런 공감대가 형성되면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이견을 좁힐 수 있다. 편집장은 필자를 존중하고 필자 역시 편집장의 역할을 존중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보통 6주에 한 편의 글을 쓴다. "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요인들이 작용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고 보는가.

"특정 분야에서 장인(master)이 되려면 10년간 1만 시간의 훈련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를 쓴 적이 있다. 나 자신도 워싱턴포스트지에서 10년 동안 기자로서 활동하면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소양을 익혔다. 그런 뒤 뉴요커로 자리를 옮겨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요인은 절묘한 타이밍이다. 내 글의 일차 독자는 비즈니스맨이다. 경제적 요인 외에 사업 성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때 그들이 원하는 글을 썼다. 자신들의 세상 밖에서 어떤 생각과 현상이 빚어지는지에 대한 지적 욕구를 채워준 게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왜 워싱턴포스트지를 그만뒀나.

"다른 저널리즘 일을 해보고 싶었을 때 뉴요커의 제안을 받았다. 나의 시각이 반영된 호흡이 긴 글을 쓰고 싶었다. 급여는 감소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

▼창조적 작업 과정에서 '우연한 발견(serendipity)'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내가 찾지 않아도 다가오는 생각(idea)들이 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에서 서쪽으로 나가 인도에 가려고 했지만 북미에 도착했다. 자신의 의도와 다른 무언가를 찾은 것이다. 저널리즘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저널리스트는 유연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의도했던 것에 만족하는 수준에 머무르면 안 된다. 새로운 사실에 우연히 마주쳤을 때 옛 사고를 버리고 직면한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

▼또 다른 저서 '블링크(Blink)'에서 '순간적 클릭(click)'의 역할을 설명했는데.

"빠른 인식에 관한 것이고 의사결정의 문제다. 사람들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본능적인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론 유용하고 때론 위험하다. 그런 현상을 탐험해봄으로써 순간적 선택이 전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민해 봤다. "

▼작가로서 성공한 뒤 강연 요청이 적지 않을 텐데.

"1년에 20여 건 정도 된다. 한국에서도 몇 차례 초대를 받았지만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조만간 한국을 꼭 방문하고 싶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