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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숲을 보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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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의사로서는 드물게 1970년대 독일의 뒤셀도르프 대학병원에 정식으로 취업돼 현지 독일 의사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일했다. 당시 한국의 의학 수준은 낙후돼 있어 많은 변화와 발전이 필요했다. 때문에 선진국인 독일에서 의술을 펼치며 좋은 시스템을 습득해야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독일의 의료 시스템이나 장비,시설 등은 당시 한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발달돼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놀라웠던 점은 바로 그들의 협진 시스템이었다. 환자를 위해 필요 없는 과정을 줄이고 서로 다른 진료과 의사가 협력하며 환자를 살려내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심근경색이 발병해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수술을 받기까지 30분도 안 걸리는 경우도 목격했다. 이후 세종병원을 개원한 뒤 이 같은 협진 시스템을 도입했다. 불필요한 절차 없이 관련된 모든 과의 의료진이 같이 컨퍼런스를 하며 논의하고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융합할 수 있게 됐다.

    30년이 지난 현재 한국의 의료 수준은 독일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시설은 물론이며 첨단 장비,인프라에선 오히려 독일을 넘어서는 수준이 됐다. 나아가 세부전문의 제도까지 도입되면서 내과,외과로 크게 나누던 진료과가 내시경 세부전문의,중환자 세부전문의 등 마치 핵이 분열하는 것과 같이 세세하게 전문화됐다. 핵이 분열하면서 큰 에너지를 내는 것과 같이 세분화된 전문 과목은 그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도를 넘어설 정도로 너무 세분화된 시스템으로 인해 전문의들은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보는 우를 범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내과 전문의에게 수십년간 진료를 다니던 사람이 간암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내과 의사가 전과를 해주지 않는다고 퇴원 후 외과에 입원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 불거진 유명한 흉부외과의의 새로운 수술법 논란도 그렇다. 같은 병원에서 서로가 신뢰하지 못하고 논문까지도 조작 운운하며 서로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환자에게 불신을 주고 인터넷에서는 기사를 보고 갑론을박하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이와 같이 현대 의료계는 핵분열이 극에 달해 폭발 직전의 위험 단계에 와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과학계에서 최근 핵분열에 대한 연구보다 핵융합에 대한 연구가 더욱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핵이 융합하면서 내는 에너지는 분열하면서 내는 에너지의 수백 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료계도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는 핵의 융합이 필요하다.

    자신의 영역만 볼 줄 아는 의사가 아닌,숲을 보는 의사가 필요하다. 다른 과와 협진이 잘 이뤄지고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전문 진료과가 아니더라도 의견의 교류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 과학계뿐만 아닌 의료계도 핵융합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박영관 세종병원 회장 sjhosp@sejong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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