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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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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때 농생명공학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서부활극을 보며 광야에서 말이 달리는 광경을 떠올렸다. 그래서 '호연지기'를 꿈꾸며 농대 진학을 원했다. 그러나 당시 산부인과 전문의셨던 아버지는 나를 불러놓고 "한국의 열악한 의료 현실을 개선해보는 것은 어떻겠니?"라고 설득했고 고심 끝에 의대에 진학했다. 아버지의 권유가 계기가 되었지만 인생의 갈림길에서 스스로 내린 내 자신의 선택이었다.

    의대 실습 시절 대한민국 심장수술의 1세대이며 전도사라고 할 수 있는 이영균 교수가 심장수술을 하는 모습을 돔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그날 나는 내 운명이 흉부외과 전문의임을 깨닫게 되었다. 국내 및 외국의 심장병 어린이 무료수술을 진행하는 지금의 나는 이것이 나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1985년쯤으로 기억한다.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신사가 다 큰 소녀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알고 보니 10여년 전 내가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권고했던 소녀였다. 진찰해 보니 적기에 치료를 못해 불치의 아이젠맹거증후군으로 발전한 상태였다. 그 아버지는 "예전에는 가난해서 치료를 못해줬지만 열심히 일했습니다. 꼭 살려주세요"라고 했다. 딱한 사정을 듣고 나는 소녀를 영국의 심장 명의 제이콥 박사에게 의뢰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심장,폐,간을 모두 이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소녀는 세상을 등졌다. 비교적 단순한 심장병이었지만 가난이 그 소녀의 삶을 빼앗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비단 소녀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내 심장병 아이들이 의료 선진국인 미국 독일 영국 등의 도움으로 치료 및 수술을 받았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평생 고통 속에 살거나 세상을 등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적기에 치료한다면 정상인과 같이 생활할 수 있는데 가난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생각에 병원을 개원한 지 7년 만인 1989년 처음으로 외국의 어린이를 초청해 심장병을 수술하게 되었다. 수술을 받기 위해 해외의 도움이 필요했던 우리나라가 해외 어린이들을 수술하게 된 것으로 역사상 전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러한 나의 일에 사람들이 의문을 갖는다. '왜 해외 환자를 직접 초청해 수술하는 것이냐'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 그들을 직접 수술하는 것이나,그나라 의료진을 교육해 수술을 하게 하는 것보다 그 예후와 성공률이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심장수술이란 의료진의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시설,그리고 중환자실에서의 치료가 무엇보다도 성공률을 상승시킨다. 물론 이러한 방법이 더 고되고 힘든 일임을 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으로 그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영관 세종병원 회장 sjhosp@sejong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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