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임기를 마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재임 동안 통화 긴축과 완화의 `극과 극'을 달렸다.

한은이 금리 중심의 통화정책을 운영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모두 27차례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내렸는데, 그 중 11차례(41%)가 이 총재 재임 기간 이뤄졌다는 수치가 이를 보여준다.

이 총재가 임기를 시작한 2006년 4월, 당시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소인 집값을 잡으려고 한은 금통위는 2006년 6월과 8월, 2007년 7월과 8월 잇달아 금리를 올렸다.

물가 안정을 지상(至上) 목표로 삼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그가 `인플레이션 파이터'의 면모를 보인 것도 이때였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임기 후반부는 금융위기와의 고된 씨름이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를 겪는 가운데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안정을 도모하고 실물경제가 위축되지 않도록 그는 금리를 그야말로 숨 쉴 틈 없이 내렸다.

위기에서 회복 국면으로 진입하자 금리 인상을 포함한 `출구전략' 논의가 달아올랐다.

13개월째 사상 최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한 채 그는 금리 인상 결정권을 차기 김중수 총재에게 넘기고 자리를 떠나게 됐다.

그가 퇴임사에서 밝힌 "금융위기 대응조치의 정상화 등 한은의 당면 과제들을 생각할 때 임직원 여러분께 무거운 짐을 지워 놓고 훌쩍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하다"는 말에는 저금리로 말미암은 부작용에 대해 아쉬워하는 마음이 녹아 있는 것으로 읽힌다.

특히 이 총재가 퇴임식에서 가계부채 문제와 함께 한은 직원들에게 강조한 숙제가 정부와의 `화이부동(和而不同ㆍ잘 어울리되 같아지지 말라는 뜻)'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마침 이날 신임 김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이명박 대통령은 한은 안팎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한은의 독립성을 위해 적극 지원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도 정부'라는 등의 발언으로 한은 독립성과 통화정책 중립성에 대한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난을 받던 김 총재도 귀국 직후 한은의 독립성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과연 김 총재가 적절한 시기에 금리 인상을 단행할 수 있을지, 정부가 연초부터 행사한 한은 금통위 열석발언권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지 등에 관심이 쏠린다.

또, 한은의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하는 한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서울연합뉴스) 홍정규 기자 zhe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