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버냉키…의회 로비로 FRB '슈퍼 감독권' 챙기다
지난해 6월 크리스토퍼 도드 미국 상원 금융위원장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한껏 조롱했다. "자동차 사고를 낸 아들에게 부모가 또다시 덩치가 더 크고,속도가 더 빠른 자동차를 맡기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비난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FRB의 감독권을 대폭 강화하는 금융감독 개혁안을 제출했을 때다. 도드 위원장은 기존 권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금융위기를 초래한 FRB에 더 큰 권한을 줘서는 안 된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는 이후 FRB에서 은행 감독권을 박탈해 별도 기구에 넘기고,소비자 보호권도 떼내야 한다는 안을 내놨다. FRB는 통화정책에만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그랬던 도드 위원장이 정반대로 입장을 바꿨다. 15일(현지시간) FRB의 두 가지 권한을 인정하는 금융감독 개혁법안도 내놓을 예정이다. 일부는 FRB의 권한을 오히려 강화하는 안이다. 그는 지난주까지 자산 1000억달러 이상인 은행 감독권만 FRB에 주려고 했다가 다시 500억달러 이상으로 기준을 낮췄다. 이렇게 되면 감독 대상인 대형 은행이 23개에서 35개로 늘어난다.

특히 도드 안은 비은행권의 대형 금융사를 FRB가 감독토록 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미 최대 보험사인 AIG처럼 부실해지면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금융위기 주범으로 꼽히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와 신용카드 상품 등의 무분별한 판매 등을 규제하는 소비자금융보호청도 FRB 산하에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다 새 권한인 지급결제 관할권까지 FRB에 안길 것으로 알려졌다.

180도 달라진 도드 위원장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월가 금융업계의 로비가 작용한 것은 기본이겠지만 벤 버냉키 FRB 의장의 집요한 로비가 먹혔다고 볼 수 있다. 공화당인 부시 전 정부 때 첫 임명된 버냉키 의장은 민주당인 오바마 정부에서 연임에 성공했으나 의회로부터 FRB의 권한을 지켜내는 일이 시급했다.

실제로 의회를 상대로 한 그의 로비력은 대단하다는 평가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8월4일~11월30일 자신의 연임 여부를 1차로 표결할 금융위 의원 23명 중 18명을 만났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블룸버그통신이 FRB에서 제공받은 그의 일정을 통해 확인됐다. 지난 1월13일에는 상원 금융위에 11쪽짜리 서한을 보내 로비했다. 은행 감독권을 분리해 FRB가 시장 정보와 흐름을 놓치면 통화정책마저 위태롭다고 호소했다.

버냉키 의장은 대형 금융사를 강력히 규제하자는 '볼커 룰(Volcker Rule)'을 주도하며 전면에 나선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생자문위원장(전 FRB 의장)의 측면 지원도 이끌어냈다. 그는 지난해 볼커 위원장을 여섯 차례 만났으며 이 가운데 다섯 번은 독대했다. 그 결과 볼커는 버냉키의 연임을 지지했다. 버냉키 의장이 상원 금융위에 호소문을 보낸 다음 날인 1월14일 그는 뉴욕 경제클럽에서 가진 연설의 대부분을 FRB가 감독권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할애했다. 볼커는 이어 1월30일 같은 주장을 담은 기고문을 뉴욕타임스에 실었다.

FRB의 두 선후배 수장이 죽이 척척 맞는 것은 동병상련의 처지가 한몫했다고 데이비드 존스 전 FRB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볼커는 1980년대 초 FRB 의장일 당시 인플레를 잡으려 기준금리를 20%로 과감히 인상,FRB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버냉키 역시 이번 금융위기의 FRB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도드 위원장이 보인 것과 같은 분노와 적대감을 샀다.

버냉키 의장과 볼커 위원장은 17일 다시 한번 세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상원이 금융 개혁안을 추진하는 미묘한 시기에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가 'FRB의 은행 감독과 통화정책 사이의 연관성 검토'라는 주제로 주관하는 청문회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백악관과 재무부도 버냉키 의장의 FRB 감독권 유지 노력을 지원하는 우군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FRB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도 의회에 관련 로비활동을 공격적으로 벌였다고 전했다.

버냉키는 답례인 듯 지난달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의 위안화 절상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재무부를 거들었다. 환율 문제는 재무부 소관이나 그는 "중국이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도널드 콘 FRB 부의장 후임으로 재닛 옐런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를 유력하게 꼽았다. 옐런은 실업률,임금 분야 전문가로 버냉키의 초저금리 정책과 향후 출구 찾기를 지원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때 금융위기 책임론에 내몰리는가 싶었던 버냉키가 로비력을 동원한 금융개혁 작업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될지는 최종 법안이 통과돼야 확인될 전망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