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겪는 상당수의 고통은 저 멀리 있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들에 의해 초래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가까운 만큼 아픔의 상처가 크다. 또 자주 마주치기 때문에 용서가 쉽지 않다. 밖에서는 대인관계가 좋고 관대하더라도 집안에 들어오면 독선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이 의외로 많다.

나는 대학교 2학년 때 아내를 만나 10년 사귀고 결혼했다. 오랜 세월 만나면서 서로가 지니고 있는 생각과 정서를 웬만큼 안다고 자부했는데,젊어서나 지금이나 언성을 높여 다툰 적이 적지 않다. 서로 안 맞는 사람끼리 부부의 연을 맺었나 낙담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부싸움 자체는 실로 자연스런 삶의 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마주치면서 겪는 아픔과 상처를 나누고 감싸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부부싸움에는 절도를 지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판사로 있으면서 이혼사건을 다뤄 보니 가정파탄의 근저에는 인격적 모욕에서 나아가 물리적 폭력이 넓게 깔려 있음에 놀랐다. 여권은 차츰 신장되고 있지만,지금도 가정폭력에 신음하는 여성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지난해 가정폭력으로 살해당한 여성의 숫자가 프랑스에서는 사흘에 한 명꼴이라고 했던가. 우리나라에서도 언론에 보도된 것만 70명쯤이라는 사실은 끔찍하기만 하다.

언젠가 남편을 살해한 아내의 형사사건을 다룬 적이 있다. 남편으로부터 수년간 하도 자주 맞아 엄청난 피해의식과 극도의 과민 상태로 불안에 가득 찬 아내가 자고 있는 남편을 칼로 찌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정당방위는 '현재의' 급박한 공격에 대한 방어여야 하는데,당시 남편은 평온하게 자고 있어서 정당방위 대신 심신미약을 인정해 형을 감경했다. 당시 재판실무 경향이 심신미약을 잘 인정해주지 않아서인지,이 판결이 전향적이라 하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세월이 흘렀지만 내 손을 떠난 그 사건은 그 후에도 가끔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매 맞는 여자의 심정,그들이 앓는 스트레스성 장애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해 보면서 '매 맞는 아내의 정당방위'도 좀 폭넓게 인정할 여지가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 정서상 부부싸움에는 가능한 한 제3자가 끼어들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인지 경찰도 다소 소극적이고 미온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가정폭력의 사각지대는 점점 더 커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가정법원이 가정폭력을 다루는 사건에서 전문조사관 활용,동반 상담,치료 위탁 등의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정의 평화와 안전이 최우선시돼야 하는 게 아닌가.

이주흥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 juhlee@hwaw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