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늘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터진 2007년의 미국보다 사정이 더 나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당장은 가계대출 확대를 막는 한편 일자리창출 등을 통해 채무상환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가계부채 어느 정도이기에

지난해 6월 말 기준 가계의 금융부채는 818조4000억원.연간 국민소득에서 소비지출액을 뺀 가처분소득이 572조3000억원이란 점을 감안하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배율은 1.43배에 이른다. 한국의 가계부채 배율은 2004년부터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04년 말 1.13배에서 2007년 말 1.36배로 뛴 뒤 지난해 3월 말엔 1.4배를 넘어섰다.

가계부채가 이처럼 급증하고 있는 것은 아파트 등 주택가격 상승 때문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2005년부터 서울지역의 아파트가격은 지난해 말까지 48% 상승했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이후인 2008년과 지난해에도 각각 3.2%와 2.6% 상승했다.

이 때문에 은행 등 금융회사로부터 빚을 내 아파트를 구입하는 양상이 전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금융부채가 836조8000억원으로 더 늘었고 이후에도 주택담보대출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계부채 배율은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상황은 미국이나 영국과는 정반대다. 미국의 경우 서브프라임이 터진 2007년 가계부채 배율이 1.36배였으나 지난해 6월 말엔 1.27배로 낮아졌다. 영국 역시 같은 기간 1.72배에서 1.67배로 떨어졌다.

◆저축률 미국보다 낮아져

세계 최대 소비국가였던 미국에서 가계는 2007년을 기점으로 주택대출과 소비를 줄이면서 저축을 늘리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미국의 개인순저축률이 2007년 0.6%에서 2008년 1.8%,지난해 5.4%로 높아진 것으로 추계했다.

반면 2000년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최고 저축국가였던 한국은 부동산값 상승과 급증하는 주택대출로 인해 저축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개인순저축률은 1999년까지만 하더라도 15%였으나 2007년과 2008년엔 2.6%와 2.5%로 뚝 떨어졌다. 지난해엔 소비를 줄이는 통에 저축률이 높아졌지만 OECD는 미국보다 낮은 5.1%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보다 저축률이 낮은 OECD 회원국은 일본(3.3%) 슬로바키아(3.9%) 노르웨이(4.6%) 덴마크 핀란드(각 5.0%) 정도에 불과하다.

◆성장잠재력 훼손이 가장 큰 문제

전문가들은 가계부채가 당장 금융부실을 초래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7월 기준 국내 주택담보대출의 담보인정비율(LTV)은 47.1%로 미국의 74.9%나 영국의 85.2%보다 낮다. 집값이 반토막나지 않는 이상 금융권 부실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부채 대비 금융자산이 외국에 비해 많지 않아 상환능력이 낮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배율은 2.29배로 미국(3.01배) 영국(2.46배) 일본(4.39배)에 비해 떨어진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성장잠재력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는 미래와 현재의 균형 문제"라고 말했다. 주택에 대한 투자도 투자이긴 하지만 현재에 지나치게 투자함으로써 향후 소비하거나 투자할 여력이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가계부채를 줄이는 손쉬운 방법은 금리 인상이다. 하지만 경제회복세가 확고하지 않은 가운데 금리를 올리면 경제가 재차 하강할 가능성이 높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 연구원은 이런 점을 감안,"가계부채가 위험수위에 이르는 것을 막으려면 가계대출 증가율을 억제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을 통해 개인들이 채무상환 능력을 유지토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