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 다문화정책은 비전,효율성,예산규모로 보아 가히 세계적 수준이다. 급증하는 체류 외국인과 이민자,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을 우리 사회에 성공적으로 통합시켜야 한다는 다급한 현실을 인식한 후 과거 압축경제발전을 이루어 낸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다문화정책을 펴나가고 있다. 정부뿐만 아니고 국민은 한술 더 뜬다. 앞다퉈 다문화사회 구축을 위한 지혜를 내놓고 있으며,특히 엘리트 층에게 '다문화'는 일상의 덕담이며 필수 자격이 된 것 같다.

최근 외국신문기자가 필자에게 "한국정부는 왜 다문화정책 일색으로 펴나가고 있느냐?"고 물었다. '저출산,체류 외국인과 이민자 증가,글로벌 국가경쟁력 강화' 등을 이야기했더니 "그 외 다른 이유는 없느냐?"고 다시 몇번 확인했다. 합리적인 이유 외에 급박한 비밀이 있는지 캐내고 싶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의 경우 이민자가 전 인구의 10%인 800만명이 되자 그제서야 다문화주의에 대한 찬반 의견을 내놓으며 정책화하기 시작했고,다른 나라들도 비슷한데 불과 얼마전만 해도 '단일민족'이라고 자랑하던 우리나라가 2%가 채 안되는 체류 외국인을 가지고 떠들썩하니 말이다.

사회변화는 정책과 교육으로 인도되는 하향식 과정과 사회구성원 체질이 변화되어 사회체계를 변화시키는 상향식 과정이 동시에 진행돼야 이상적이다. 하향식 과정은 다분히 합리적,논리적 비전을 따라서 비교적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지만 상향적 과정은 오랜 세월을 거쳐서 감성적이며 문화적으로 변화되는 장기 과정이다. 우리 사회의 다문화적 변화가 정부에 의한 하향식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은 한계가 있고 국민 자체가 변하는 상향적 변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다문화사회로 변신할 수 있다.

정부는 민간단체들을 통해 국민의 다양한 사업과 활동을 독려하기 위해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주무부처에 등록하게 하고 있다. 이민과 다문화단체는 정부의 이런 취지가 대표적으로 적용되는 경우이다. 그런데 금방 퇴직한 공무원이 정부정책을 그대로 들고 나와 다문화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민간인 출신이 지역사회 경험을 통해 사업계획을 세운 경우에 비해 주무부처에 법인으로 등록하고 관련 정부용역을 따는데 훨씬 더 경쟁력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영리단체의 기본 취지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현실이며 하향식 흐름에 길들여져 있는 사회의 면모이다.

다문화주의는 일방적으로 정부에 의해 강요될 수 없다. 또한 획일적 다문화주의 집행은 얼마 안가서 다문화주의를 반대하고 외국인을 싫어하는 극우파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원래 가지고 있던 계층,지방,집단간의 갈등과 미숙한 공존능력이 다문화주의라는 정책에 의해 이민자에게 전가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원색적 언어로 구체적 실례를 들어 외국인을 비판하며 동조자를 구하는 인터넷 카페 등이 생겼다. 물론 이런 카페는 정부당국의 지속적인 모니터가 필요하고 중심인물들의 배경도 파악하는 등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정부의 하향식 다문화정책이 국민의 상향적 변화에 비해 너무 앞서가지 않고 조화롭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다문화주의는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세계에서 다양한 민족,집단,개인들이 자유롭게 창조력을 발휘하며 사는 사회를 구축하고자 하는 이상이다. 정부와 교육기관이 초기에 안내할 수 있으나 위로부터 주도하는 것은 그 원칙과 상반된다. 다문화주의는 엘리트의 대화거리나 정책페이퍼 소재가 아니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이다.

지난날의 압축경제성장 후유증을 앓고 있는 우리나라가 다문화사회로의 성숙 문제에서만은 빨리빨리식으로 대충하지 말고 자연스럽고 온전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박화서 < 명지대 교수·이민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