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재정적자로 위기에 몰린 그리스를 지원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로이터통신은 9일 독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EU 회원국들이 그리스 지원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내부에서 그리스를 지원키로 결정했다"며 "구체적인 지원 방법은 최종 결정되지 않았지만 현재로선 유로존 회원국끼리 개별적으로 그리스와 협약을 맺는 쌍무적 지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당초 EU는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개별국가 문제라며 개입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리스발 위기가 유로화 가치와 증시를 폭락시키고 대규모 자금 유출을 초래하는 등 유로권 전체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태도를 바꿨다.

그리스 지원은 유럽의 경제강국인 독일과 프랑스 주축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독일이 EU 회원국과 함께 그리스에 대출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최근 만나 그리스 구제방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의 연정 파트너인 귀도 베스터벨레 자유민주당(FDP) 총재도 "독일은 그리스 편"이라고 언급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10일 파리에서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그리스 재정위기 타개책을 협의했다. 베르나르 발레로 프랑스 외교부 대변인은 "우리는 친구이고 가족"이라며 "그리스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페르난도 도스 산토스 포르투갈 재무장관도 "EU 규정상 힘들더라도 필요할 경우엔 그리스에 대한 지원이 확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11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특별정상회의에선 그리스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가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호아킨 알무니아 EU 통화담당 집행위원은 "그리스가 엄격한 긴축조치를 단행한다는 조건 아래 EU 회원국들이 그리스를 지원하는 방안을 특별정상회의에서 촉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EU가 그리스 지원에 나설 경우 1999년 유로 단일 통화권 출범 이후 11년 만에 첫 번째로 지원하는 사례가 된다.

누리엘 루비니 미 뉴욕대 교수는 EU의 그리스 지원과 관련해 "EU가 옳은 방향으로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 식의 엄격한 재정 지출 및 경제개혁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해왔다. 루비니 교수는 "그리스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면서 "스페인과 포르투갈도 높은 수준의 재정적자와 대외 경쟁력 약화라는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위기에서 초래된 민간부문의 손실 가운데 일부를 공공부문이 떠맡으면서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국가채무 문제가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그리스 정부는 이날 공무원 임금을 5.5%까지 삭감하고 연금 부담을 덜기 위해 연금수령 개시 연령을 높이는 추가 긴축안을 내놓으며 지원 분위기를 조성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그리스 정부가 내놓은 추가 긴축안에 대해 "달성 가능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리스 정부는 또 10일 파업에 들어가는 공공부문 노조에도 "보너스 삭감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날 그리스 노조는 정부의 호소에도 불구,임금 삭감 등 구조조정 철회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단행했다.

공항 관제사 등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그리스 전역 공항에서 국제선 및 국내선 항공350여편이 전면 취소됐다. 또 시내버스, 전철,철도 등의 운행도 오전과 오후 출퇴근 시간에 3시간씩 차질을 빚었다. 이날 아테네 도심에선 ADEDY와 그리스공산당(KKE) 지지세력 7000여명이 의회 앞 신타그마 광장까지 행진하고 집회를 가졌다. 한편 프랑스를 방문 중인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총리는 이날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면담한 뒤 "재정적자 감축계획은 어떤 경우에도 이행될 것"이라며 노동계 반발에 양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