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회사들이 초고속인터넷 현금 마케팅을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가입자 유치 경쟁이 격화하면서 업체 간 다툼이 결국 정부 현장조사로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달 통신업계 신년 간담회에서 최고경영자(CEO)들이 공개적으로 약속한 '과당 마케팅 자제' 결의를 무색하게 한다.

◆이전투구 벌이는 초고속인터넷 시장

초고속인터넷 2위 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는 KT의 마케팅이 적정 수준을 넘어섰다며 증빙자료를 모아 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10일 밝혔다. KT가 최대 12개월간 기본료를 면제하거나 전화 · 인터넷TV(IPTV)와 함께 가입할 경우 최대 42만원의 현금을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KT는 월 3만원대 상품을 6000원에 제공하는 등 경쟁사가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영업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특정 이용자에게만 과다한 경품이나 요금할인을 제공하는 것은 '이용자 차별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KT 측은 "경쟁사들이 오히려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며 발끈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LG텔레콤이 최대 40만원대의 현금을 미끼로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는 주장이다. KT 관계자는 "브랜드 파워와 애프터 서비스 등 품질이 우수한데도 KT 점유율이 계속 하락한 것은 경쟁사의 경품 마케팅 때문"이라며 "우리도 증빙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KT 측도 SK브로드밴드에 맞서 방통위에 신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서비스는 없고 마케팅만 있는 시장

통신회사들이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출혈 경쟁을 벌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가입자가 16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시장이 포화상태인 데다 서비스 품질에서 큰 차이가 없다 보니 가입자를 끌어들일 수단이 할인 및 현금 마케팅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고속인터넷을 제값 내고 쓰면 바보'라는 말까지 나온다. 소비자들도 인터넷에 가입하기 전 경품이 얼마인지 물어볼 정도다.

초고속인터넷은 인터넷전화,IPTV,유 · 무선통합(FMC) 서비스 등을 제공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다. 통신회사들은 30만~40만원의 현금을 줘서라도 3년 약정으로 결합상품 가입자를 확보하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가입자 늘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작년 말과 올해 초 각사 초고속인터넷 부문 수장이 바뀐 점도 과열 경쟁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사가 현금 마케팅 액수를 올리면 가입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금액을 올릴 수밖에 없다"며 "CEO들이 매번 자제하자고 해도 한쪽에서 현금을 쏟아부으면 버텨낼 수 없다"고 털어놨다. SK브로드밴드가 '방통위 신고'라는 초강수를 둔 것은 현금 마케팅을 지속할 경우 적자 행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방통위는 SK브로드밴드가 신고하면 증빙자료 등을 토대로 현장조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방통위가 책정한 초고속인터넷 현금 마케팅의 적정 액수는 15만원이다. 현장조사를 통해 금지행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지난해에 이어 다시 초고속인터넷 업체에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높다. 방통위는 지난해 9월 SK브로드밴드와 LG파워콤(당시)에 수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양준영 기자 tetrius@hankyung.com